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수도권 중진 의원 그리고 일부 국민의힘 최고 위원이 이른바 '번개 만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참석한 최고 위원들은 모두 친윤계였던 모양이다. 한동훈 대표는 “모르는 내용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8월 말에 예정됐던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이,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됐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추석 민생을 챙기겠다며 만찬을 연기한 와중에, '번개'라고 하더라도, 일부 친윤계 최고 위원과 대통령이 만찬을 가졌으니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식사 정치'를 하면서 친한과 친윤을 갈라치기 한다든지, 아니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사이의 감정적 앙금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혹은 한 대표 힘 빼기의 일환이다, 등등의 각종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만찬이 의정 갈등 문제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한다면, 오히려 여당 내의 친한계에 속하는 인사들의 말을 듣거나, 아니면 야당 인사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번 '번개 만찬'이 매우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또한,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정치적 사안에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도 우려된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하지만, 대통령과 같은 핵심 정치인은, 자신의 감정을 정치 과정에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정치에 투영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지도자 혹은 정권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만찬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사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만찬 회동이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요사이 여론 조사를 보면, 대통령의 지지율과 여당의 지지율 그리고 장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의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 사이에 '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3%, 국민의힘 지지율은 31%, 그리고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은 14%였다. 여권과 관련한 각종 지지율이 모두 동반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월 초 정도까지는 대통령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러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앞섰고,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았는데(한국갤럽 기준), 지금은 여권과 관련한 모든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그리고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 사이에서 나타나는 커플링 현상을 하루빨리 타개해야 하는데, 이번 대통령과 일부 여당 지도부의 '번개 만찬'이 그런 기회를 본의 아니게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즉,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원활하게 협력한다는 인상을 주면, 여권 관련 모든 지지율 사이에 커플링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과 여당 대표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내재한다는 인상을 주거나, 실제로 갈등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조하다고 하더라도 여당의 지지율은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일부 최고 위원하고만 만찬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이왕 이런 모습이 노출된 이상, 한동훈 대표는 '할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대통령을 추종하는 상황에서는 한 대표의 지지율이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보수층에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국민의힘 혹은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이 오르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여론을 잘 챙기는 것이 지금 국민의힘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