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1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에너지기업이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등장했다. 제대로 된 부문별 수직계열화를 갖춘 에너지기업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생긴것이다. 11월 1일 자로 출범한 SK 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작회사 이야기이다.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시작한 SK이노베이션은 1980년 선경이 인수하여 민영화 이후 오랫동안 '유공'으로 국민에게 불려 왔으며, 1990년대 이후 SK의 이름 아래 여러 법인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이번에 통합법인으로 재출발하게 된 것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자산 100조 원대, 매출 88조 원대로 국내는 물론 아시아권 민간기업 중 최대 규모이다. 한국전력공사의 2023년 매출액이 88조 원 규모였으니 실로 국내 최대 에너지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서도 중국 등에 더 큰 규모의 에너지 공기업들이 있지만 이들을 포함해도 아시아에서 8~9위권이다.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이제 에너지자원의 개발을 담당하는 상류 부문은 물론 정유, 석유화학, 주유소 등 중류 및 하류를 모두 갖추고 있는 명실공히 제대로 된 에너지기업이다. 엑손모빌(ExxonMobil),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아람코(Aramco) 등 국제적인 에너지기업은 상·중·하류 부문을 모두 한 회사 안에 가지고 있어 실로 우리나라 기업으로서는 공기업 및 민간기업을 통틀어 국제적인 에너지기업들과 가장 유사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력, 원자력, 재생에너지, 천연가스, 도시가스, 그리고 수소와 배터리 등 에너지 분야의 주요 사업들을 모두 가지고 있어 명실공히 제대로 된 에너지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기업 탄생에 대한 기대로 주주총회에서 외국인 주주 95%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합병안 찬성을 권고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 의견을 내었다. SK이노베이션 주주가 합병으로 손해 볼 수도 있음을 우려하였다고 한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당장에는'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운영된다고 한다. 통합법인은 SK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SK E&S 부분은 SK이노베이션 E&S이라는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운영한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 그리고 배터리 회사인 SK온 등도 함께 합병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SK E&S가 매년 1~2조 원대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었기에 다양한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 역량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SK의 발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합병을 통하여 2030년에는 연간 영업이익 20조 원대를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두 기업의 사업역량과 연구개발 역량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달성이 그리 쉽지 않은 목표이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현재 수익 대부분이 정유 및 가스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미래 최대 먹거리로 평가받고 있는 전력 기반 탄소중립 시스템과 자원순환 사회시스템의 구성과 운영에 상당한 사업 기반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통합 SK이노베이션이지만 기업의 체질과 과감한 사업 분야 구조조정 과정을 잡음 없이 부드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제적 경쟁력 있게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현재 전 세계 시장의 불확실성이 너무나 커져 있으며 이들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 SK이노베이션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 에너지 분야는 규모의 경제성(economies of scale)이 매우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난 반세기 내내 국제적 규모의 에너지기업 하나 제대로 없어 선진국은 물론 자원 보유국들에 무시당하고 사업에 참여할 기회도 얻지 못하였다 한탄해 왔다. 이번에야말로 우리나라도 제대로 한번 에너지 사업을 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 그것도 국가 예산에 기대지 않고 민간기업의 역량으로 해 볼 수 있다는 기대, 이 기대가 아주 들뜬 마음으로 통합 SK이노베이션을 바라보고 또 응원하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