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엔 회원국이 총출동하는 이번 협약은 성과에 따라 파리기후협약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환경협약이 될 수 있다.
최대 쟁점인 플라스틱 생산 감축안에 대해 한국 정부는 당초 부정적 입장이었으나, 최근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모습이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보이는 곳도 있으나,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가하는 곳도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부산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에서 당초 플라스틱 생산 감축안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달라진 기조를 보이고 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국가에서 플라스틱 관리(재활용)를 주장하는 데, 관리가 안 될 게 뻔하다. 재활용보다는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무위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사실상 우리 정부의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세계 4위 규모의 석유화학산업 등을 고려해 생산 감축 반대에 무게를 싣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이어 최근 미국까지 생산 감축에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 전략적으로 찬성 입장으로 돌아 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협약에서는 플라스틱을 생산 단계에서부터 줄여야 한다는 강성그룹인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야심찬 목표 연합(HAC)'과, 재활용 및 폐기물 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약성그룹인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강성그룹에는 미국, 유럽연합, 아프리카, 도서국들이 속해 있고, 약성그룹에는 중국, 중동, 러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속해 있다.
한국은 HAC연합에 가입해 있긴 하나, 이는 행사 개최국으로서 모니터링 차원이라며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었다.
김 장관은 “지난번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에서 중국 측에 플라스틱 관련 입장을 물었을 때 구체적인 수치와 감량 목표 제시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며 “플라스틱 문제는 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이를 그냥 지나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단계적 조치를 통해 확실히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고자 한다"며 협상국들과의 논의를 통해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의 바뀐 기조를 두고 환경단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한국 정부가 생산 감축에 대한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한국이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서 개최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협약의 본래 의미를 유지하도록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수진 소비자기후행동 서울대표는 “환경부 장관의 발언을 적극 찬성하고 환영한다. 지금까지는 하지 않다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관이 직접 말했으니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안하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우용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환경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순전히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앞두고 나온 립서비스일 뿐이라고 본다. 실제로 생산을 감축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까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의 정책은 산업계 입장을 반영해 후퇴하고 있다"며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들도 철회하는 상황에서, 플라스틱 감축 지지 발언은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단체 관계자 중 한 명은 “김완섭 장관은 기재부 출신으로 그동안 환경부 산하기관에 처가 관련 납품 이슈가 있었던 인물이다. 그런 분이 감축을 언급한 것은 행동으로 실천되기 전까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안이 통과되더라도 어차피 트럼프 정권이 이를 폐기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찬성 입장을 보이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우리 정부의 플라스틱 생산 감축 찬성 입장에 우려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석유화학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어 생산을 감축한다면 업계 타격이 클 것"이라며 “협약 목적이 오염 방지인 만큼 생산 감축보다는 재활용 등 폐기물 처리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을 목표로 회의를 진행해왔다. 부산에서 열리는 제5차 회의가 마지막 회의로, 이번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중순 전권외교회의에서 최종 협약이 공표될 예정이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안이 관철된다면 파리기후협약에 버금가는 성과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