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6년부터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내년 상반기 전기요금 도매가격을 지역별로 차등화한다고 한다. 발전소가 많아 전력자립도가 높은 지역은 싸지고 수도권과 같이 발전소에 비해 수요가 많아 전력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가격이 오른다. 현재 계획은 kWh당 최소 19원에서 최대 34원의 격차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국경제인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대 도매가격 격차 34원이 그대로 소매가격에 반영될 경우 수도권 제조업체 전체가 내는 전기요금은 현재보다 1조3748억원이 증가할 것이며 이 중 전자·통신 업종은 6248억원으로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렇게 전력요금의 지역별 차등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래 이 제도는 송배전 비용을 그대로 소매 요금에 반영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발전소에서 먼 거리에 있는 소비지는 가까운 곳보다 더 많은 송배전 비용을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왜 전국 단일 요금제를 채택하고 있었을까?
그건 우리나라의 전력망이 좁은 국토에 매우 촘촘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송배전 효율도 높아 그 손실율이 3.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한국전력의 송전이용요금 단가표를 보면 기본요금 외에 사용요금의 차이가 수도권은 2.44원/kWh, 비수도권은 1.42원으로 전체 전기요금에서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한전 입장에서도 차등 고지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으니 그냥 전국 단일요금제를 시행해 온 것이다. 전력공급 비용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 않은데 왜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시행하려는 걸까? 이유는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전력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중립이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청정자립에너지 보급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에 국회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지역 또는 인근지역에서 생산·공급하는 분산에너지의 활용을 높이고자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이를 근거로 2026년부터 소매 요금의 지역별 차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첫걸음을 떼는 방향이 영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전력거래소와 산자부, 한전 등 전력당국이 지난 7월에 마련한 '지역별 전력 도매가격 차등요금제 기본설계안'은 2026년 소매요금 차등화에 앞서 내년에 도매가격부터 차등화하기 위한 시행안이다. 전체 가격은 유지하는 가운데 차등을 두다 보니 발전소가 많은 지역의 발전소들은 도매가격이 낮아지게 된다. 가격 차등화가 노리는 효과가 발전소가 적은 지역에 발전소를 늘리든지 아니면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기업이 분산되는 것이지만 그런다고 도매가격이 높아지는 수도권에 얼마나 발전소들이 늘어날 수 있을까?
설령 가격이 높아져 수도권에 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화력발전은 환영받기 어렵다. 미세먼지 오염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데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지비용이나 용수 공급 때문에 건설비도 만만치 않다. 본래 분산에너지법이나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추구하는 바는 청정·자립에너지의 활성화이다. 청정한 자립에너지의 생산이어야 비로소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고 이에 근거한 가격 차등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대형 원전이나 화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이미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 있다. 또한 수도권이라 해도 화력발전소가 많은 인천은 전력자립도가 186%에 이르고, 비수도권이라 해도 대구와 광주, 대전은 13% 이하이다. 이들 지역은 나름대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이 시행하려는 지역별 전기요금의 근거는 단순한 전력자급도가 아니라 청정한 자립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자급도가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모든 건물과 시설들을 발전소로 만들 수 있어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고 송배전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풍부하게 제공되는 지역에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이를 필요로 하는 전자·통신 산업의 지역 분산도 꾀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법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역별 요금제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롭게 도입하려는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순항하려면 원칙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지향은 청정한 자립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확대임을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