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귀환을 확정지으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지구촌 탄소시장이 출범도 하기 전에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참석한 200여개국 대표들은 유엔(UN)이 운영하는 '국제 탄소시장' 운영 지침을 승인했다.
이는 국가간 탄소배출권 거래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2015년 파리협정 이후 9년 만에 세부 이행 지침이 수립될 전망이다. 국가 또는 기업이 산림 보전과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을 통해 감축한 온실가스 양을 거래할 수 있는 길이 확장되는 셈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단행한 투자를 통해 줄어든 탄소배출량을 투자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오프쇼어링'(자국 사업장의 해외 유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에 앞서 성급하게 논의가 마무리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비영리단체 탄소시장감시의 이사 머들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 실패 대응 방안 마련을 비롯한 과제가 산적했다"고 꼬집었다.
지속가능항공유(SAF)가 팜유를 비롯한 바이오연료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산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 등 탄소배출권을 둘러싼 '그린 워싱' 논란도 여전하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도 국내 그린워싱 적발건수가 2021년 272건에서 지난해 4940건으로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신제품의 탄소배출량을 '0'이라고 홍보했으나, 환경부가 매스 밸런스 방식의 문제를 들어 광고 삭제 및 정정을 요구하는 행정지도 처분을 내린 사례가 포함됐다.
바이오매스 발전에 필요한 연료 공급을 위해 과도하게 벌목하거나 탄소배출권 확보를 목적으로 산림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의 거주지를 파괴하는 등 환경·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언급된다. 향후 거래 취소를 비롯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각국의 참여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과 달리 이번 총회는 미국·프랑스·인도·브라질 등의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명분은 페루 리마에서 마련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참석이지만, 글로벌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하자던 조약의 실효성이 퇴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만명에 달했던 전체 참석 인원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시장에서 빠지면 수급 밸런스가 무너질 공산도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2060년으로 잡고, 인도·러시아를 비롯한 탄소 다배출국도 유럽과 비교하면 느슨한 감축량을 제시하는 등 형평성 문제도 여전하다.
2030년까지 약속한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매년 6조7000억달러(약 9364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된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너무 클 뿐더러 '최대주주' 미국이 빠지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기후변화 정책을 가리켜 '신종 녹색 사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라고 비난하는 중으로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기후분석 사이트 카본 브리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이 2030년까지 40억t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원유 채굴량을 늘리고 천연가스 수출도 확대하는 등 화석연료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데 따른 것이다.
국제관계학계 한 관계자는 “탄소중립을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중"이라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기후변화는 사회주의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발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궤를 같이하는 등 국제사회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