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목)



[EE칼럼] 신뢰 상실의 시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11.28 10:58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특별법 전성시대다. 최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특별법'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했더니, 22대 국회에서 특별법 이름을 달고 발의된 법안이 369건 나왔다. 개원한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말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안도, 여야에서 5개나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해 '선진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원전수출지원 활성화 특별법', '원전산업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10여 개에 달한다.과거 원자력 분야에서는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 등 일반법과 이들 법에 따른 정부의 정책과 계획으로도 원전 산업을 지원하고 규제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특별법은 일반법에 대해 그 범위를 한정하여 특별히 제정된 법이다. 그래서 특별법은 현안 해결 등 특수 목적 달성에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특별법 남발은 입법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통일적인 법체계를 훼손하는 단점이 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특별법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자체 핵무장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6월 27일 공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66%가 찬성했다. 이와 함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재처리 능력을 확보해 잠재 핵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나 대중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북한의 잦은 도발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나, 국익에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냉철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기반한 확장억제력을 북핵 대응 수단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이것이 북핵 대응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형국이 돼버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신뢰 상실.' 표면상 별개인 듯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의 밑바닥에 깔린 공통 원인이다. 원자력 관련 특별법이 왜 그리 많이 필요할까? 다수의 원자력 현안은 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단임 정부의 약속과 정책만으로는 완전 해결이 어렵다.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 정부 때 완전히 뒤집어졌다. '공론화위원회'라는 꼼수를 동원해 너무나 쉽게 바꿔버렸다. 이렇다 보니, 원자력 정책의 일관성 보장은 공염불이 되었다. 그래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원자력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보장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특별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공무원들의 믿음도 사라졌다. 과거에는 정부 정책이나 상관 지시에 따라 일한 공무원들은 면책 대상이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공무원 조직에서 상관 지시를 거부하고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에 인신 구속까지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니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업무에 대해서는 실행에 옮기기 전 확실한 추진 근거를 찾게 됐다. 그것이 바로 특별법이다.




자체 핵무장론은 왜 힘을 얻어가고 있을까? 한·미 확장억제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확장억제에 대해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필요할 때 확장억제가 제대로 작동할 것을 보장할 수 있나? 미국 내 정권이 교체돼도, 세대가 바뀌어도 확장억제의 지속성은 보장될까? 한·미 정부는 자체 핵무장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질문들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도 감정만 앞세운 핵무장론은 자제해야 한다.


안보와 에너지는 우리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들 문제의 해결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여‧야와 정부가 합심하여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 상실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멈추는 최고의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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