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마이크론에 61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최종 확정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정치 불안으로 인한 대미 협상력 약화와 함께, 경쟁사의 대규모 보조금 확보로 인한 시장 경쟁력 약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 보조금 수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마이크론, 대규모 보조금 확정…한국 기업들은 발 묶여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마이크론에 61억6500만달러(약 8조8300억원)의 직접 보조금과 40억달러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따른 최대 규모의 지원이다. 마이크론은 이 자금을 활용해 뉴욕 주에 1400에이커(5.7㎢) 규모의 메가 캠퍼스를 구축하고 아이다호 주의 기존 시설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번 투자로 마이크론은 9000개 이상의 직접 일자리와 4만개 이상의 건설 및 공급업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뉴욕 공장에서는 AI, 자동차, 산업용 장비에 필수적인 DRAM을 생산하며, 버지니아 공장은 현대화를 통해 국방산업과 자동차 산업용 장기 수명주기 칩 생산을 강화할 예정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미국 정부와 각각 64억달러, 4억5000만달러 규모의 예비 양해각서를 체결했음에도 아직 최종 확정을 받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 170억달러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패키징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보조금 확보는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설비투자 보조금 30% 지원 시 생산 원가가 최대 10% 절감되며, 3나노 공정의 경우 웨이퍼 1장당 감가상각비가 5271달러에서 3690달러로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 공급 증가의 주요 요인이 기술발전(47%)보다 설비증설(53%)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어, 보조금을 통한 설비투자 확대가 시장 점유율 확대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마이크론은 DRAM 시장 점유율도 21.5%로 상위 3사 중 유일하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 아이폰15 시리즈에 LPDDR5X 메모리를 공급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엔비디아향 HBM 공급에서도 삼성전자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미흡한 韓정부 반도체 지원…그마저도 정치 불안에 'STOP'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 정부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 탄핵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방부장관은 구속됐고, 핵심 참모진과 국무위원들도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여당 대표와 총리마저도 “대통령의 질서있는 조기 사임"을 언급할 정도로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반도체 보조금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반도체 업계가 더 우려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직접 보조금 지원 체계 부재다. 미국(390억달러), 일본(18조원), EU(64조원), 중국(4조원)이 대규모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면, 한국은 세액공제와 대출 중심의 간접 지원에 머물러 있다. 특히 세액공제는 투자 후 사후 지원이라 적기 투자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칩 수출의 70% 이상이 중국과 홍콩 향이며, 원자재의 75%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는 대만(10% 미만)이나 일본(30%)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높은 중국 의존도는 추가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의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2032년까지 9%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하는 중국은 같은 기간 전체 반도체 시장의 21%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이어 정치적 안정을 통한 대외 협상력 회복이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