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리더는 왜 있는 것일까? 필자가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2003년의 이야기부터 해 보자. 일본인 지인과 함께 차를 몰고 동경으로 가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국회 의사진행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을 두고 참의원 의원들과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라크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대량살상 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세계의 안보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자위대의 이라크전 파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제 정신이냐며,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아무런 객관적 증거도 내밀지 못한 채 미국의 주장이 맞다고 강변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궁색해 보였다. 아무리 일본 정치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크다고 하지만 행정수반인 총리가 노골적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미국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시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 반환 등 여러 이슈에서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던 터라 더 대비되어 보였다. 일본인 친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총리는 당연히 저래야 하는 것 아닌가. 총리가 국회에서 욕을 먹으면서 미국 입장을 지지하니 미국이 더 파병을 서둘러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고,국민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주장에 대놓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지 않나." 조금 충격을 받았다. 국가 지도자의 체면을 손상시켜 가면서 국민들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리고 약간의 깨달음도 얻었다. 지도자는 자기 몸에 검댕을 묻히면서 국민들의 자존심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일본 정부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다음 해에야 마지못해 이지스함과 소수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한국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달랐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고 동등한 위치를 고수하려 했고,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도 살펴야 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당시 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 의견을 낸 것에 대해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나름 그 의견에 공감하는 바도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2003년 4월 2일 국회는 비전투병력의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철군을 결정한 2008년 말까지 우리나라는 총 3000여명의 병력을 이 전쟁에 보냈고 이는 미국, 영국에 이어 연합군중 세번째로 대규모 파병이었다. 이 결정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는 재앙이었다. 취임 당시 60%에 달했던 지지율이 이 것 때문에 20%까지 급락했다. 노 대통령은 나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고 국익을 지켰던 것이다.
두 리더 모두 국가와 국민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기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 썼고, 노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잃었다.리더가 지켜주어야 할 국가와 국민의 가치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 재산권과 경제적 이익, 헌법상의 자유 등 많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 리더는 어떤 가치를 희생해서 무엇을 지켜야 할 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그 결단이 독단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하게 리더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시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상대국이었고 원유, 천연가스, 알미늄 등 필수 원자재의 주요 공급처였다.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교민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활발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우리 조선소에 40척 이상의 대형선박 건조를 발주해 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미국, EU, 일본 등은 광범위한 대러 수출규제와 금융제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정부는 우리 국민과 기업의 타격이 적은 부분부터 적극적으로 제재에 참여했다. 그러나, FDPR로 대표되는, 비전략물자에 대한 자발적 수출규제는 우리 대러수출을 본격적으로 제약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유력 언론 등을 중심으로 정부의 미온적 제재 참여에 대한 비판이 계속 커져 갔다.
수출규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씨도 먹히지 않았고, 국격에 걸맞는 희생을 해야 된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2022년 3월 FDPR 참여를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대러 제재가 기업 피해로 번지지 않도록 뼈를 깎는 외교적 노력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2년반이 지난 지금, 적지 않은 우리 기업들이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멀쩡한 수출상품에 대해 상황허가를 신청했다가 반려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정부가 기업에 대해 이럴 수 있냐고 항변하는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런 결정을 했던 전 정부에 대해 격한 비난을 쏟아낸다. 2021년의 상황을 설명하면 그땐 제재가 이런 의미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돌이켜 보면 모두의 이익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결정은 우리 선택지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여론은 한국의 국격과 동맹의 가치를 경제적 이익보다 앞세우는 선택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그 결과로 고통받는 기업들을 마주할 때 마다 당시 이 결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그 책임의 막대한 무게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잡다한 이야기를 했지만, 현재로 돌아와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리더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국민을 지키려 몸을 내던지는 이, 자기 이익을 희생하면서 국익을 지키려는 이, 어려운 선택을 하고 그 책임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이, 그 어느 누구도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책임 있는 의사 결정에서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로 현장에서 서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공무원들이 없다. 중요한 정책 결정들이 멈춰서 있고, 국회는 여야간 정쟁의 장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배가 불렀는지 코인과세 같은 설익은 어젠다를 내놨다 주어담는 등 연이은 실책으로 점수를 까먹고 있고,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은 흉하기 짝이 없는 내분에 휩싸여서 민생이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위선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령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이자 책임감 없는 리더가 자기 이익을 위해 어떤 짓까지 벌일 수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 주었다. 바로 하루전이었던 12월 2일 공주에서 열렸던 민생토론회에서 경제와 소상공인, 서민을 살리겠다고 비장하게 약속했던 대통령이다. 그가 겨우 하루만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기울어 가는 자기 권력을 지키려 했다. 국민의 인권을 초법적으로 제약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국회기능을 정지하겠다는 계엄사 첫 포고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6시간만에 내외 압박으로 계엄령이 해제되었지만 그 상처는 앞으로 두고 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80년대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군사독재를 몰아내려 거리로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같은 시기를 살았던 대통령이 이럴 수 있는가? 거듭된 정쟁과 쿠데타, 내분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들이 아사지경에 빠졌던 남수단의 내전이 상기된 것은 과한 일일까?
리더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로서 자기 소임을 다하는 행위자를 말한다. 역할을 손에서 놓고 자리에만 연연하는 리더는 없는게 낫다. 그가 자기 책무에 따라오는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방종하게 행사한다면 더더욱 존재 자체가 해악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을 위해 자기 이익을 희생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이제라도 조용히 물러나 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