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과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에 풋옵션 분쟁에서 신 회장이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주식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해야 한다는 2차 국제 중재가 나오면서 향후 신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어피니티는 교보생명 지분 24.01%에 대해 액면분할 전 기준 주당 40만9000원에 되사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신 회장과 업계 안팎에서는 해당 가격의 적정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 회장이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고, 어피니티 측과 협상을 통해 합당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ICC 2차 중재...“내년 1월까지 평가기관 선임해야"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는 교보생명 2대 주주인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BPEA EQT(구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이 신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중재에서 신 회장이 어피니티의 풋옵션 주식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신 회장 측은 기판력을 근거로 2차 중재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ICC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이 30일 이내, 즉 내년 1월 말까지 평가기관을 선임해 FMV를 산정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20만불(약 3억원)의 강제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ICC가 어피니티 측에서 제시한 강제금(200만불)을 하향 조정하면서도, 신 회장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제재 수단을 명시한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제중재에서 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며 “감정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 회장이) 벌금을 내는 걸 감수하면서도 2차 중재 이행을 거부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30일 이내에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고, 풋옵션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 만일 신 회장과 어피니티가 제시한 FMV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을 행사 가격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의 감정평가기관인 안진회계법인이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해야 한다. 이 중 한 곳을 신 회장이 택하면 그 평가기관이 제시한 가격이 풋옵션 가격이 된다.
어피니티 가격 수용시...교보생명 시총, 한화생명의 4배
결국 양측 분쟁의 신 회장의 결단과 풋옵션 가격으로 귀결된다. 어피티니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주당 24만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풋옵션 이행 여부, 가격 등을 두고 어피니티와 신 회장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피니티는 2018년 주당 40만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신 회장은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며 이를 거부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어피니티가 주장하는 40만9000원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교보생명이 2019년 5분의 1 액면분할을 단행했고, 총 발행주식이 1억250만주인 점을 고려할 때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으로 단순 계산하면 교보생명의 시가총액은 8조원이 넘는다. 이는 보험 대장주인 삼성생명(20조5000억원)은 차치하고서라도 교보생명과 규모가 비슷한 한화생명(2조2148억원) 시가총액의 4배에 달한다. 나아가 교보생명이 작년 8월 우리사주조합, 골드만삭스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주당 가격은 19만8000원이었다. 어피니티가 요구하는 41만원대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간에 오랜 분쟁이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신 회장이 평기기관을 선임해 FMV를 산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안진이 제시하는 평가기관 3곳이 객관성, 공정성을 바탕으로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납득할 만한 가격을 제시하는지가 관건이다.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가 시장에서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풋옵션 가격을 제시한다면, 이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이 또 다른 재무적 투자자(FI)를 포섭해 어피니티의 지분을 되사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풋옵션 가격이 객관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산정됐다면, 신 회장과 어피니티 간에 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당 분쟁의 본질은 (신 회장의 자금조달 방안이 아닌) 풋옵션 가격의 객관성 확보 아니겠나"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