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정책 방향 대부분을 뒤바꿔 놓을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에너지 정책은 가장 크게 달라질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에너지 정책을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공급망 확충을 통해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했지만,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개발 확대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하락시켜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분명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선진국 중심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의 지향점은 곧 탈화석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주배출원이 화석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화석에너지 소비량은 2022년 기준 11,656 백만TOE이고, 2050년까지 남은 날 수는 10,591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대형 원전 1기 혹은 태양광 패널 4백만 장에 해당하는 백만TOE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해야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중립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국가 간, 세대 간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아직 탄소 문명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수많은 저개발 국가에 탈문명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구체적인 피해는 미래에 발생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당장의 탈문명을 현세대에게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는 에너지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하향 조정되겠지만, 여전히 중심에너지의 위치를 지켜낼 공산이 크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후변화협약, 탄소국경조정세 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인류 공통의 의제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은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전 세계 화석에너지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인 것이다. 화석에너지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가격 전망은 어렵지 않다. 수요는 여전한데 공급능력이 과거처럼 늘어나기 어렵다면, 화석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주력 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높은 발전단가가 더해지면, 전체 에너지 가격 수준의 상향 조정은 명약관화다. 가격 수준만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와 함께 가격 변동성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다가갈수록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발생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이 자주 반복되면서 에너지 위기의 상시화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탄소중립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장기간에 걸쳐 해결할 과제로 인식하고, 미국 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가교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 천연가스를 적극 개발하여 재생에너지로 기울었던 에너지정책을 재균형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도 재생에너지와 원전 양극을 오가는 에너지정책을 바로 잡을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탄소중립에 따른 고에너지 가격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인정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자원개발과 시장가격 그리고 에너지복지 점검이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자원개발 없이 변동성 높은 고에너지가격 시대를 맞는 것은 천수답 농사를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의 10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자원개발에 다시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가스 가격은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정치 흥정의 산물에 가깝다. 원가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 결과는 턱없이 저렴한 가격, 한전과 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와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했던 유류세 인하, 전기 및 가스 가격 인상 억제 등과 같은 미봉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시장 수급을 반영한 정확한 가격 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수요를 유도해 변동성 높은 시장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
고에너지가격 시대 도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빈곤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가격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촘촘한 에너지복지 그물망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것이다.
화석에너지 재평가, 가격 기능 회복, 에너지복지 향상을 근간으로 하는 균형 잡힌 에너지정책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