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스트라이크가 1차 원인으로 확인된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의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단순 조류 충돌을 넘어선 복합적 원인 규명이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버드스트라이크가 무사히 해결된 것과 달리, 이번 사고는 엔진 손상에 이어 랜딩기어 작동 불능으로까지 이어져 대형 참사가 됐다는 점에서 정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버드스트라이크 확인…본격 조사 착수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이승열 사고조사단장은 “사고 항공기에서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주요한 상황 중 하나가 드러난 상황이지만 조사는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버드스트라이크와 대형 참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5년 동안 국내 공항에서 이착륙 중 발생한 버드 스트라이크는 총 500건이다. 하지만 이번 처럼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경우는 없다.
사고 현장인 무안공항의 경우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총 10건의 버드스트라이크가 보고됐다. 사고 발생 47일 전에도 한 외항사 항공기가 조류와 충돌해 인천공항으로 긴급 회항한 사례가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버드스크라이크가 대형 사고로 확대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 내 공항에서만 1만9400건의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했다. 여기에 미국 항공사들이 해외 55개국에서 추가로 보고한 236건을 더하면 연간 2만건에 육박하는 조류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안전하게 착륙했으며, 심각한 사고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치명적 6분'의 항공기 상황 규명이 핵심
하지만 이번 사고는 버드스트라이크 발생 후 불과 6분 만에 참사로 이어졌다. 관제탑이 오전 8시 57분 조류 충돌 경고를 보냈고, 1분 후인 8시 58분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선언했다. 이후 9시 3분 랜딩기어 미작동 상태로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참사가 발생했다.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복합적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메이데이 선언 직후 항공기의 위치정보(ADS-B) 송신이 중단된 점으로 미뤄 전기계통 고장이 동반됐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사고 조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될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항공사와 조종사의 대응이다. 버드스트라이크 발생 후 복행 결정의 적절성, 비상 매뉴얼 준수 여부, 랜딩기어 수동 작동 시도 등이 조사 대상이다.
두 번째는 항공기 제조사의 책임이다. FAA와 유럽항공안전청(EASA)의 인증 기준에 따르면 항공기 엔진과 랜딩기어는 일정 수준의 조류 충돌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랜딩기어 계통의 설계 결함이나 인증 기준 미달이 확인될 경우 제조사의 책임이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항 당국의 조류 관리 실태다. 무안공항은 88종의 조류가 출현하는 철새 도래지로, 6종의 조류가 충돌 위험 3단계로 분류됐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공항들이 레이더와 초음파 장치, 총소리를 모방한 스피커 등으로 조류를 퇴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무안공항의 환경영향평가에서 음파포와 레이저, 경고등 설치가 제안됐으나 활주로 확장 공사로 인해 이행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항 당국의 안전 관리 책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블랙박스 조사 진행 한창…사고 원인 드러날까
한편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함께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현재 워싱턴 NTSB 본부에서는 커넥터가 분실된 상태로 발견된 비행자료기록장치(FDR)의 데이터 추출 준비 작업을 완료했으며, 9일(현지시간)부터 본격적인 추출 작업에 착수한다.
조사위원회는 FDR 데이터 추출에 약 3일, 초기 중요 데이터 분석에 약 2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는 국내에서 데이터 추출과 음성파일 변환, 녹취록 작성 작업을 완료한 상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승객 안전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제주항공 측에 있다"며 “조류 충돌 이후 랜딩기어 작동 불능까지 이어진 연쇄적 고장의 원인과 각 당사자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