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요즘 미국도 대통령이 바뀌는 시기가 되니 부동산 규제를 이렇게 바꾸자, IT기업 규제를 저렇게 바꾼다 하는 뉴스가 자주 보인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규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와 안전에 해를 끼치는 일을 누군가가 도모한다면 이를 규제하여야만 구성원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매우 강력한 규제가 항상 좋은 것일까? 아무도 새로운 일을 도모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저 해 왔던 대로 반복할 뿐이니 특별한 규제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규제가 너무나 강력해도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지 않는 거세된 사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강력한 종교적 규제 하에 있던 유럽의 중세시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회 내에서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발전과 규제는 서로 쌍을 이루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규제를 통해 발전의 방향을 정하고 그 속도를 조절하고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 구성원간에 합의된 약속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어떤 규제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그 사회에 가장 좋은 것인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된 규제가 가장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 잘 사용하였을 때의 유익이 대단히 커서 우리나라 같은 산업국가의 토대가 되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주지만, 안전관리에 실패하게 되면 재난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두 지점 사이에서 그야말로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린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에 이은 전문적 실행규칙 합의도 필요하게 된다. “원자력을 안전하게 이용한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경우, 얼마만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며 어떻게 이것을 검증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전문적인 규제 프레임이다. 원자력안전법 제1장 1조에서 “이 법은 원자력의 연구ㆍ개발ㆍ생산ㆍ이용 등에 따른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방사선에 의한 재해의 방지와 공공의 안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어서, 원자력이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안전'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법과 그 하위 법령들이 그 규제의 실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기존에 건설하고 운영해 오던 원자로형에 대해서는 상세한 규제 지침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를 모두 미리 정의해 둘 수가 없는 것이니, 기존 원전에 대해서조차 지침서만 가지고 실제 규제를 다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최신형 원전일수록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고안된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도 어렵다.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였다고 하자. 그때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인한 건강 손실 가능성이 그 단층촬영을 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유익함을 초과한다면 어떤 의사도 그 촬영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예는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명확하고 그 유익과 불익이 명확하여 상대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쉬운 경우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에는 분석이 훨씬 복잡하다. 심각한 사고가 나서는 안된다는 대전제하에서 설계한 플랜트이므로, 처음부터 2중 3중의 안전 방벽을 가지게 설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의 비상대응 시스템도 마련해 두고 있다. 엄격히 교육된 경험많은 운전팀이 최고 신뢰도의 설비를 가지고 검사에 검사를 거듭하면서 운영을 한다. 얼듯 보기에는 완벽해 보인다. 위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실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러한 플랜트의 위험도(리스크)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전문성과 과학적 지식을 집대성하여 리스크를 분석한 후, 위험이 큰 곳에 규제가 집중되어야 한다. 위험이 없는 곳에는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규정집에 의존한 규제는 그 규정집이 대상으로 삼은 플랜트가 대상으로 삼은 상황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특정 상황에만 유효한 규제를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려고 하면 당연히 맞지가 않게 되고, 규제의 목적이었던 '안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구현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는 위험도에 기반한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에 대해 수백명의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검증하여, 거기서 도출된 위험요소에 대해 위험의 정도에 상응하는 규제 행위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리스크정보활용 규제 체제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이 과학적인 체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94년에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구 탓인지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문화에서는 규제결정자가 규정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이면 모든 가능한 경우에 대해 규정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규제는 지금 매우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책임추궁 문화와 규정집기반 규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프레임을 빨리 버리고 과학과 시스템에 기반한 규제로 옮겨가야 사회적 합의를 뒷받침하는 진정한 규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