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홍보 등의 영역에서 사용되던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용어가 되었다. 우리가 화랑에서 유화를 감상한다면 액자가 중요한가 아니면 그림 자체가 중요한가? 당연히 그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액자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프레임 전쟁이다.
2017년 탈원전 정책의 선언되었을 때, 신고리5·6호기와 신한울3·4호기의 건설을 중지시켰다. 각각 30%와 10% 정도의 건설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적 반발이 일어나자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 여부에 대해서 공론화에 붙였다. 이때 건설중단을 주장하는 측이 제시한 프레임이 '밀집'이었다. 고리부지의 4개호기과 신고리부지의 6개호기를 합치면 고리에 10기의 원전이 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세계 최고의 밀집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리와 신고리는 '고리'라는 단어만 같이 쓸 뿐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3-4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작은 구릉과 도랑도 지나간다. 그런데 '밀집'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나자 아무도 실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야말로 '밀집'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2023년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커졌을 때,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염수를 처리하고 희석하여 배출기준치 이하 농도의 처리수를 만들고 이를 방류하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맞는 표현이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염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고집하였다. 이 단어가 더 친숙하고 널리 사용됨으로써 오해가 확산되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여년간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면서 처음으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공개하였다. 초안을 공개하고 이를 국회에 보고하고 공청회에서 논의하였던 것인데 그 이전 단계로 실무안이 공개된 것이다. 공개해놓고 분위기를 봐서 조정을 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야권은 '원전비중이 너무 많다.'는 프레임을 걸었다. 산업부는 신규원전 건설을 1기 줄이고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그 2배정도 늘리는 조정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프레임의 마법에 걸려서 신규원전 건설이 당초에 얼마였고 재생에너지 건설이 얼마였는지 보는 대신에 '원전비중이 많다'는 것을 그대로 믿는 듯하다.
제11차 전력수급계획 실무안에서 신규원전 건설은 4.9 기가와트(GW)였다. 대형 원전 3기와 SMR 1세트인 셈이다. 재생에너지는 72GW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가 14배 많다. 기존에 건설된 것을 포함하여 보아도 마찬가지다. 2038년 설비비중이 원전이 36.6GW, 재생에너지가 119.5GW가 되는 것에 원전비중이 높은가?
비중이 높거나 낮다는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신규발전의 양 또는 설비용량 어느 쪽으로 보다도 원전비중이 높다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전력공급의 원칙 가운데 무엇을 가장 중시할 것인가이다. 전력공급의 안정성, 가격, 이산화탄소 배출저감. 이 세가지 원칙 가운데 어떤 것이 얼마나 우선이고 또 다른 원칙을 어떻게 잘 섞어서 최적안을 만들어내는가 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이산화탄소 배출저감도 원칙이 아닌 듯하다. 원전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떄문이다. 그 자리에 재생에너지보급이라는 프레임이 걸린 것이다.
RE100이나 여러 가지 환경관련 지표는 같은 오류를 보이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RE100의 뜻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저감하자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재생에너지를 보급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산화탄소배출저감의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다. 전체에너지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탄소전원의 비중을 따지는 것이 맞다.
현재 수준의 재생에너지 보급으로도 한전의 적자가 늘어나고 있고 전기요금은 치솟고 있다. 최근 현대제철은 전기요금떄문에 미국으로 이전을 발표한 바 있다. 원전 10기분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삼성전자, 7기분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SK하이닉스 등은 전기요금이 2배로 뛰었다. 흑자를 보기 어려운 구조로 가는 것이다. 전력공급의 다른 원칙인 안정적 공급과 가격은 완벽히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당초안인 재생에너지 72GW도 제대로 건설할 수 없을 것이고 전력공급의 차질을 예상하던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프레임씌우기를 잘하는 비전문가가 압도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