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2014년 당시 독일 총리였던 메르켈이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삼성전자(삼전)의 경영혁신 비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같이 각국 정상들이 한국 대통령보다도 더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삼전의 이재용 회장이다. 삼전이 8만 전자에서 5만 전자로 날개 없는 추락을 할 때도 한국민은 자손에게 물려줄 주식으로 삼전을 생각하고 외국인의 무차별 매도를 받아냈다. 그런데 지금 종합전자 회사인 삼전은 반도체를 하도급 생산하는 회사에 불과한 대만 TSMC 시총(1,700조 원)의 1/5인 350조 원에 불과하다. 2015년만 해도 삼전의 시총은 TSMC의 2.5배였다.
반도체 공정은 설계, 제조, 조립으로 나뉜다. 설계만 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 제조만을 하는 기업을 파운드리, 조립 및 검사를 하는 기업을 OSAT라고 한다. 여기에 인텔이나 삼전과 같이 설계 제작, 조립을 일괄공정으로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가 있다. 팹리스는 공장(Fab) 없이(less) 설계만 한다는 의미다. 빅테크에 속하는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이 대표적인 팹리스 회사다. 한국의 팹리스 기업에는 LX세미콘, 에이디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파운드리 기업은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제작만 하는 회사로, 대표적 회사는 TSMC, 미국의 Global Foundry, 중국의 SMIC 등이 있다. 반도체 조립과 테스트를 하는 OSAT 기업으로는 미국의 AMKOR, 대만의 SPIL, ASE 등이 있다. 한국에는 하나마이크론, SFA반도체, 네페스 등이 있다. 과거의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대량 생산 체계에는 일괄공정의 IDM이 대세였다. 그러나 삼전과 인텔의 예에서도 입증되는 바와 같이 다품종 소량시스템에는 부적합하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공정의 수직 분업이 요구된다. 이에 삼전도 반도체 공정의 수직적 분업의 하나로 지난 2021년 이후 파운드리를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다. 2024년 TSMC는 파운드리만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60조 원에 달하지만, 삼전은 약 4조 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2024년 말 TSMC가 시장점유율 65%인데 삼전은 한 자릿수로 추락한 결과다. 삼전 난국 수습의 실마리로서 파운드리 분사와 미국 상장을 제기한다.
이는 “삼성전자도 파운드리를 분사하고 이를 미국에 상장하는 것은 어떨까?" 2022년 7월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낸 리포트 '지경학 시대와 반도체'에서 제기한 내용이다. 삼전의 실무진은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사를 시기상조로 판단하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TSMC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2025년)의 저자 린훙원은 TSMC의 독주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삼성이 고객 신뢰 다시 얻는 게 시급하다고 전제한다. TSMC와 삼전의 파운드리 사업 결과가 차이가 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TSMC는 파운드리에 전문화된 회사이기 때문에 품질과 연구개발 속도에 우월성이 있다. 둘째는 애플과 같은 파운드리 고객사들이 삼전의 다른 부문과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제작 전문회사이기 때문에 자사의 반도체 설계도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삼전에게는 불안하다. 셋째는 인재의 문제다. TSMC에서는 파운드리가 주업이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인재가 집합된다. CEO인 웨이저자를 비롯하여 28명의 이사 중 17명이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반면에, 삼전에서 파운드리 사업부는 삼성후자에 속한다. 그만큼 인재 확보가 어렵다. 삼성후자는 삼전을 제외한 그룹 계열사들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최근에는 삼전 내부에서도 전자와 후자로 나눈다. 삼전 내부에는 초과 실적 성과금으로 연봉이 50% 격차가 나타난다. 동기부여가 되는 전자가 있다면 사기가 저하되는 후자가 있다. 후자에는 인재가 모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