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주 칼럼]이재명대표, 실용주의 행동으로 보여달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2.04 11:02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원주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흑묘백묘론은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의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이 했던 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중국 공산당이 마오쩌둥의 교조적 정경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허용하고 시장의 문을 열게 되는 개혁개방정책의 시발점이 되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은 당시 마오쩌둥과 소위 4인방에 의해 주도되었던 문화혁명의 후과로 북한보다 못 살 만큼 피폐했던 중국을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로 올려 세운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이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덩샤오핑의 공산당은 당의 절대 권력에 기대어 정치와 경제를 모두 국가가 장악하던 이념적 사회주의를 벗어나 시장 참여자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을 비롯한 기득권 엘리트들이 경제적 이권의 배분에 개입할 수 있도록 묵인했다. 그러한 개혁은 급속한 경제성장이라는 성과와 동시에 사회와 국정 전반의 부정부패, 그리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당장의 시급한 개혁을 위해 잠재적인 반대 세력들까지 모두 만족시키려 했던 덩샤오핑의 선택은 쥐만 잘 잡았던 것이 아니라 벽지를 찢고 가구를 갉아먹는 버릇없는 고양이들이 창궐하는 세상을 열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십 년 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이 당에 의한 절대적 통제와 분배 우선주의 정책, 즉 사실상 마오쩌둥으로의 회귀를 주장할 수 있었던 씨앗은 이미 덩샤오핑 시대에 뿌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나? 단연코 그렇진 않다.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여전히 꽉 막힌 대나무숲 뒤에 숨어서 상상속의 평등과 인민 행복을 부르짖는 가난하고 정체된 나라로 남아 있거나, 서로 다른 민족들로 갈갈이 찢어져 형체도 남기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행복한 선택은 없다. 공동체를 위한 하나의 결단은 항상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 보는 자를 낳게 되어 있다.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손해 보는 이들을 설득하고 이익 보는 이들을 최대한 늘려서 사회 전체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정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품에 안는 포용의 정치여야 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집합이론에 빗대어 이야기해 보자. 두 개의 서로 다른 집단이 일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공유하는 부분을 교집합이라고 부른다. 각자가 가진 공간 중 공유된 부분을 제외한 것을 여집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모든 공간을 합친 것을 합집합이라고 한다. 정치를 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행위는 바로 교집합에 속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정책이므로 쉽게 결정하고 욕도 안 먹을 수 있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서로 상대방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험악한 분위기라고 한다면 각자가 자기가 소유한 여집합만을 주장할 것이다. 심지어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될성 부른 사회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나나 우리 편에게 이익이 안 되더라도, 혹은 손해가 되더라도, 상대편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서로 내려 준다면 모두의 이익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피해가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의 합의를 통해 보상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 보상은 이익 보는 지분의 일부를 공유하거나 국가재정의 문을 열어서 해결할 수 있다. 합집합의 정치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난 수년간 우리 국민들은 제 정신이 아닌 정치를 보아 왔다. 보수와 진보의 각 정파가 서로 찢어져서 상대편에 이익이 되는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반대부터 하고 보는 여집합의 정치를 목도해야 했다. 국정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좌파 종북주의자라며, 독재자라며 엄연히 국민이 선출한 정치 지도자들을 서로 범죄자로 낙인찍기 바빴다. 정의롭고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할 국가 권력을 자기 이익을 위해 남용했으리라는 의혹도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다. 서로의 발목 잡기가 꼬리를 물면서 결국에는 전대미문의 계엄령과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국민들은 살기 힘들고 앞길이 막막하지만 자기가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정치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심지어는 탄핵 법정에 서서 '계몽령'이라는 전대미문의 헛소리를 하는 모습까지 보아야 한다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우리도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국민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정치 집단의 성향이나 이익에 맞지 않는 결정이라도 국익에 부합한다면 과감하게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주주의와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제하기 위해 친시장적인 개혁과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을 수송용 유류 가격개편을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휘발유, 경유, LPG 가격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도록 했다. 보수 지지층에 의해 빨갱이로 매도되고 퇴임 후에는 정치적 탄압으로 불행한 선택까지 강요 당해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 사회 각계각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라고 하는 가장 논란이 컸던 통상 정책의 변혁을 일구어 냈다. 경제성장의 전설을 등에 업고 보수 대표주자로 등단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출신 경영자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간의 동반 성장과 산업 생태계 복원이라고 하는 친진보적인 규제 어젠다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상대 진영까지 아우를 수 있는 통 큰 합집합의 정치야말로 우리 공동체와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는 책임 있는 행위인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선택은 없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부작용은 온전하게 선택한 자가 지고 가야 할 짐이 된다. 부작용이 두렵다고 선택을 안 하거나 모두가 공감하는 선택만을 한다면 그런 이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불안하다. 최근 우리나라 거대 야당의 대표가 공식적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인용했다. 덩샤오핑의 선택이 가져왔던 부작용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덩샤오핑의 고민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극한 대립의 정치 구도속에서 좌파 극단주의자로 비난받아 왔던 그가 중도에 선 많은 국민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격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의 거대 야당은 더 이상 집권당의 실책을 비판하는 견제자로서의 역할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야당 단일의 의사 결정만으로도 많은 개혁입법들을 성사시킬 수 있다. 그러한 결정들이 국가와 국민의 삶과 미래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이념과 가치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하게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성공했던 다른 진보진영의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친화적이고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대안들부터 보다 과감하게 택해 주기를 바란다.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주는 규제들은 꼭 필요할 때 사회적 동의를 얻어 제한적으로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충분히 행동할 수 있는데 정권을 얻고 난 뒤에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안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당장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여당 또한 힘을 합쳐 주어야 한다. 위난의 시기에 국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야당의 주장이라고 반대부터 하고 보는 여집합의 정치를 해선 안 된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실용주의자는 우리 국민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보수든 진보든 국태민안의 시대를 열어 주는 고양이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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