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주필](http://www.ekn.kr/mnt/file_m/202502/news-p.v1.20250211.7c8791e453034ebf843a6e4bcc910c26_P3.jpg)
▲신연수 주필
역시 트럼프다. 취임하자마자 전방위적인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의 전형이다. 국제정치 용어인 벼랑 끝 전술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술을 말한다. 트럼프는 1기에 이어 2기에는 더 강하게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모양이다.
우리에게 벼랑 끝 전술은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을 묘사하는 단어로 친숙하다. 그러나 사실 원조는 미국이었다. 냉전시대 소련에 대해 핵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위기를 고조시키는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미국에 저작권이 있던 벼랑 끝 전술이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할까.
◇트럼프는 왜?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은 특히 경제 통상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트럼프가 동맹국이자 이웃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25% 관세를 선언했을 때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 무역전쟁은 대개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다른 나라들의 보복 관세로 이어져 세계 무역이 크게 줄고 경기침체와 대공황이 심해졌다. 세계 경제가 1930년대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된 지금, 미국의 높은 관세가 실현되면 상대국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도 타격을 받는다. 공급망이 마비되고 물가가 상승하며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참모와 관료들도 무역전쟁의 위험을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트럼프는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는 한 달 보류했지만 철강 반도체 유럽 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는 왜 이러는 걸까?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미국에 공장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관세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고 한다.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미국 공장에서 자동차가 완성되려면 관련 부품들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여러 차례 드나들 만큼 오늘날의 제조업은 다국적으로 얽혀 있다. 더 많은 이익과 더 적은 비용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미국 헌법상 대통령은 2번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다. 4년 안에 이 복잡한 산업의 재편이 얼마나 이뤄질까.
◇미국에 대한 국내외적 도전과 응전
트럼프의 전술은 경제적 목적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목적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의 지지 세력인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바이든 정부 시절 경제가 활성화되고 성장률도 높았지만 이번 대선 직전 유권자의 70%는 경제가 나쁘다고 했다. 아마존 구글 같은 빅테크와 월스트리트가 아무리 잘 나가도 저소득층은 성장의 과실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불만을 파고들어 보호무역의 기치를 내걸었다.
둘째 미국 정부의 엄청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미국 연방 정부 부채는 36조 달러(약 5경 2천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가 넘는다.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을 약속했기 때문에 재정적자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내국세에서 줄어드는 세금을 관세로 메우겠다는 생각이다.
셋째 관세를 국내 문제 해결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계획이다. 콜롬비아가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을 실은 항공기의 착륙을 거부하자 트럼프는 콜롬비아산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콜롬비아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거시경제 지표보다 정치 사회적 효과다. 자유무역과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노동자들을 달래야 하고, 턱밑까지 추격해오는 중국을 눌러야 한다. 냉전 이후 세계를 1극 체제로 재편했던 미국이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도전받고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은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끝나고 다른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쉽게 변할 수 없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트럼프 1기의 중국 봉쇄와 보호무역 기조를 상당부분 이어받았었다. 트럼프는 이를 좀 더 거칠고 과격하게 실행할 뿐이다.
벼랑 끝 전술은 자칫 모두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전술이다. 재앙을 피하려면 미국의 요구에 호응하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챙길 현명한 외교가 필요하다. 세계 각 국이 발 빠르게 대미 외교를 펴고 있지만 한국은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꼼짝을 못하고 있다. 조속한 정치 안정과 힘 있는 경제외교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