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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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지난 5일(현지 시간) 워싱턴에 위치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회복력 있는 동맹 간 에너지 협력' 회의가 열렸다. 필자도 발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함께 한국, 미국, 일본 간 에너지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알래스카의 댄 설리번(Dan Sullivan) 의원이 기조연설을 통해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상기 회의 직후인 6일부터는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간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시바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양 정상이 '미·일 황금시대'를 열어가자고 한 이 자리에서도 알래스카 자원 개발이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등장했다. 일본은 약 440억 달러(한화 약 62조 원) 규모의 알래스카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며 이를 미국으로부터의 관세 압박에 대한 방패로 삼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 가스는 관세 전쟁에서의 방패, 그 이상의 지정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알래스카는 미국 에너지 자원의 보고 중 하나이다. 하지만 환경 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기조 속에서 그 잠재력은 봉인되어 왔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다양한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의 개발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첫 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지원하고,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NPR-A: National Petroleum Reserve of Alaska) 및 주 내 다른 지역의 자원 제한 문제를 해결하며,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NWR: 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서 불법적으로 취소된 석유 및 가스 임대 계약을 복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을 사인했다. 이미 트럼프 취임 직전인 1월 10일, 알래스카주의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공사(AGDC: Alaska Gasline Development Corporation)는 LNG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개발 업체인 글렌판(Glenfarne)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었는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계기로 알래스카의 가스 개발 및 수출 프로젝트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나 일본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에너지 공급에 있어 절대적인 부분을 수입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공급받아 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한국과 일본에게는 지속적인 고민거리였다.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탈(脫) 중동산 석유·에너지 다변화를 위해 가스와 원자력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스는 파이프라인으로 도입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나, 1969년 11월 4일, 일본이 알래스카로부터 LNG를 도입한 것이 세계 최초의 LNG 사업이 되었으며, 대륙으로부터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LNG 시장에 있어서 줄곧 높은 지위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 이에 더해 최근에는 탈 러시아산 가스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들이 LNG 수입을 늘리면서 글로벌 LNG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이 도입하고 있는 사할린산(産) LNG 계약도 순차적으로 만료될 예정이니 만큼, 향후 10년 내에 이를 대체할 공급원을 마련할 필요도 커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래스카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각광 받을 가능성이 있다. 중동 지역에 비해 운송 기간이 절반 내지 3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송로 상 호르무즈 해협이나, 말라카 해협 같은 초크포인트(choke points)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절한 가격에 도입할 수만 있다면 이를 가공하여 동남아시아와 같은 신흥국 시장에 되파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대지에서 시작되는 가스 개발이 한미일 삼각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마침 19-20일 동안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한 민간 경제사절단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 정부와의 통상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니 만큼, 알래스카 가스 개발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