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취임한지 두 달여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기세가 무섭다. 관세 폭탄, 불법 이민자 추방, 이스라엘-하마스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개입, 트랜스 젠더의 스포츠계에서 추방 등 여러 쟁점 이슈를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 정책수단은 대통령 행정명령(President Executive Order)이다. 2월 12일 현재까지 총 65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취임 후 열흘 동안 서명한 행정명령 수가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후 100일 안에 서명한 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행정명령 중 에너지 및 환경과 관련된 내용은 6개이다. 제일 먼저 내린 행정명령은 바이든 정부의 행정명령 및 조치 78개를 폐지하는 것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서명한 행정명령 5개와 인플레이션 감축 법(IRA)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행정명령 그리고 인프라 투자와 고용에 관한 법률(IIJA)의 이행에 대한 명령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UNFCCC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기로 하였으며 국제기후재무계획을 즉시 철회하기로 하였다. 돈도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모든 법적 권한을 동원하여 연방정부 토지에서 진행되는 에너지 공급과 개발행위에 편의를 제공하고 인프라, 에너지, 환경, 자연 자원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준공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네 번째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는 것인데 미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여 경제적·군사적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영토, 영해 및 대륙붕에서의 에너지 탐사와 생산을 장려하며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중국 등의 광물자원 무기화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기차에 대한 지원 및 특권을 폐지하고 항만, 액화기지, 파이프라인 등 LNG 수출 인프라를 비롯한 에너지설비에 대해 신속하게 인허가를 내주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다섯 번째는 알래스카의 자원 개발을 촉진하는 것으로서 알래스카 북극권에 있는 풍부한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을 알래스카 남부로 이송하는 파이프라인과 액화기지 및 항만의 건설과 운영에 관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해상 및 육상 풍력 프로젝트에 대한 연방정부의 영토 임대, 허가, 금융 대출 등을 정지하라는 사실상의 풍력발전 건설정지 명령이다.
이상 여섯 개의 에너지·환경 관련 행정명령은 임기 초반 트럼프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색깔과 방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탄소저감, 재생에너지의 확대 등에 반대하며 전통적 화석 에너지의 생산과 개발을 확대해서 미국 국민에게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일례로 알래스카의 에너지 자원 개발을 촉진함에 있어서 지난 바이든 및 그 이전의 대통령 때 진행되었던 환경영향평가, 국토관리청(Bureau of Land Management)의 결정사항, 내무부 장관의 공공토지명령(Public Land Order) 등을 비롯한 개발 관련 정부 결정 및 핵심 세부사항에 대한 조처방안을 담고 있다. 이뿐 아니라 각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간의 업무분장 및 협업 사항을 미리 파악하여 에너지 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방해가 되는 핵심 규제와 장애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주도면밀하게 지시하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수단에 대해 미리 잘 준비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정부를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 그리고 언론과 환경 및 시민단체의 반발, 법원의 제동 등 트럼프 정부 앞에 놓여 있는 장벽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에 민감한 유럽 각국도 최근 우파가 집권한 독일 총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보다는 성장, 에너지 전환보다는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에 역점을 기울이려는 모습이다. 벌써부터 몇몇 국가는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태세를 취하고 있다. 몇 년 전 탈원전과 탈탄소를 향하여 치닫는 모습과는 꽤 다른 낯선 장면이 당분간 지구촌 곳곳에서 연출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