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보수가 부정선거론을 믿는 음모론 집단으로 타락했다. 담대한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조기 대선을 통해 상속세 폐지와 투자 활성화 등 미래를 위한 토론이 진행됐으면 한다."
최근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격 대담을 가져 화제가 됐다. 정 전 주필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 앞 자신의 사무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에 대해 “기분 좋은 대담이었다. 그는 지금 전성기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극우 보수들에 대해선 “타락했다"고 일침을 가했으며 조만간 우리나라에 극심한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한국의 언론에 대해선 “정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고 죽비(竹篦)를 날렸다.
다음은 정 전 주필과의 일문 일답이다.
- 이 대표와 만난 이유와 소감은?
▲ 우리나라는 너무 진영에 따라 대화를 섞지 않는다. (다른 진영과) 대화를 하면 그 순간에 “간첩이냐", “투항자냐"라는 욕을 듣는다. 그러나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대화까지 안 하면 되겠는가. 대화를 안 하게 되면 결국에는 '자기 진영'이라는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고함을 치게 되는 것과 같다. 굉장히 크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자기 목소리다. 그래서 과감히 시도해봤다. 이 대표가 구김살 없는 놀라운 대화를 전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고 반가웠다.
- (이 대표가) 대통령 감이 된다고 봤나?
▲대통령감이 되느냐 뭐 이런 건 상대적인 거니까. 내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다 못 만나 봤기 때문에 뭐라고(평가하기 그렇다). 상대적으로 해서 누구보다 낫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 이 대표가, 에너지가 아직도 피어나는(단계로), 전성기 효과라는 것이 있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누구든지 인생에 시기에 꽃이 확 피는 시기가 있다.
-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가?
▲소위 우파 진영에서는 “너는 간첩이냐"는 둥 격렬한 비난들이 많았다. 그런데 “의외로 잘한 일이다, 대화를 앞으로 많이 해달라"는 사람들도 뜻밖에 많았다. 다만 워낙에 지금 대통령 탄핵 문제를 둘러 싸고 보수와 소위 진보 진영 간의 격렬한 감성 싸움이 필요 이상으로 과잉돼 있다. 그런 것을 좀 누그러뜨릴 수 있겠거니 하고 기대를 했었지만 먼 얘기였다.
-일각에선 “한자리 하려고 그러냐"고 비아냥대는데.
▲그런 얘기들도 굉장히 많았다. 사람들이 나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때 '한 자리'를 여러 번 거절했던 경력이 있는데 지금 와서 내가 한자리를 위해서 뛸까? 한 자리 했으면 벌써 했지. 이 나이에 무슨 한 자리냐.
-보수 논객인데도 탄핵 찬성·부정선거론을 펼친다.
▲(우리나라의) 보수가 보수의 참맛을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진영화됐다. 이제는 진영에 유리하면 뭐 진리건 진리가 아니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건 자기 진영을 강화하기 위해서 억지 논리를 한다. 보수 진영과 거리가 먼 윤석열 대통령을, 문재인 정부 보수 궤멸의 선봉장을 불러다가 보수의 대표를 맡긴 것이 타락의 시적이었다. 벌써 몇 년이 됐고 부정선거론을 숭배하는 음모집단으로 전락했다.
보수는 원래 국가를 끌어가고 진정한 진보를 책임진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라는 철학을 잃어버렸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부정선거론과 싸우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어리석게도 부정선거론을 들고 열심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더군다나 계엄사태 이후에는 보수 음모론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형편없는 저질의 퇴행적 수준으로 몰아 넣는다. 보수가 이 시대에 개탄스러운 엉터리 집단이 됐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진정한 보수의 가치관과 태도는 무엇인가?
▲예컨대 지금 계엄사태는 불법 계엄이다. 단호하게 저항하고 거부해야 된다. 폭력적인 계엄을 정당화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의 그 음습한 유산만 떠안고 있다. 지난 시대의 찌꺼기들이다. 보수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원칙에 충실해야 되고 담대한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가져야 된다. 윤석열 씨는 입만 열면 자유를 떠들지만 시장 원칙에 충실한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음모론에 충실하다. 보수주의자는 음모론하고 연결될 수가 없다.
-무지성, 탈지성의 시대다. 원인은?
▲우리나라의 종북(주의자들) 떄문에 그렇다(시작됐다). 종북은 역사의 낡은 민족주의의 썩은 찌꺼기였는데, 지금은 우파 진영이 그렇게 됐다. 권위주의적 찌꺼기다.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함몰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가면, 경제적으로는 놀라운 성취를 이룬 대한민국이지만, 그야 말로 지적으로 역사적으로 전근대 국가로 퇴행하는 것 같아서 모골이 송연하다.
- 직면한 다양한 도전에 대해 보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담대한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와 나란히 지적인 또는 문화적인 협업을 같이 하는 올바른 민주적 텍스트를 갖는 것이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인민주의로 알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 민주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것을 극복하는 정신의 고양된 수준, 물질 개발과 더불어 모든 국민들이 빈곤으로부터 해방돼 선진 국민, 21세기적 국민으로 거듭나는 데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어떻게 예상하나?
▲윤 대통령 심리 결과 발표가 곧 있을 것이라고 본다. 워낙에 현직 대통령의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 전대 미문의 엉뚱한 사태다. 헌재도 합법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느라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하지만 답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
-여론 대립이 물리적 충돌이 우려될 정도로 격렬한데?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당시 탄핵의 중추가 민주당만이 아니라 국회였다. 지금의 탄핵 사태는 (윤 대통령이) 국회를 정복하고 권능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 폭력적 사태라 비교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누구와 누구와 싸움이냐는 권력 구조가 다르다. 국힘당과 민주당 권력이 폭력적으로 부딪히고 있다.
-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보수가 승산이 있나?
▲ 보수가 꼭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정권이) 교체돼 왔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못 받아들이면 정당이 아니다. 조기 대선을 통해 정치적 혼란이 수습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기존의 낡은 대립이 해소되고 보다 새로운 종류의 토론과 여론의 장으로 옮겨갔으면 하고 바란다.
누가 이 전쟁판에서 이기고 지고 하는 지에 대해선 그다지 관신이 없다. 우리가 발전과 번영을 위해 어떤 주제로 토론을 만들어가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 경제가 매우 어렵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우리 경제가 수개월 내에 상당한 충격 속에서 부정적인 쇼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성장률이 마이너스 2, 3%대를 수개월 동안 지속하는 형태로 위기적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비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나 다음 정권을 맡겠다고 나서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국민적 복지에만 관심이 있지 성장의 에너지를 키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국민의힘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적 능력도 안 되는 정당이다.
상속세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직 투자 하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미친 소득주도성장 이런 게 아니고 투자다. 기업에서 투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고 고용도 늘어나지 않는다.
기득권과 규제를 결사적으로 풀어 헤칠 수 있는 개혁적 정부가 나오느냐 못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 민족의, 국가의 장래가 달려 있다.
-원로 언론인으로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즘 언론은 지나치게 진영 논리를 너무 심하게 갖고 있다. 진영논리는 원래 좌파의 논리다. 그런데 요즘은 우파까지도 진영 논리에 너무 빠져 있다. 일부 잘 나가는 신문들을 보면 마치 특정 정당의 기획본부 같이 보인다. 언론들이 도대체 언론답지 못하게 정치권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