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최근 반 년 동안 3조원 이상의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매각했음에도 여전히 재무 상태 악화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일반 화학제품 생산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면서 기존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은 탓이다.
올해도 국내 화학사들이 여전히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매각하지 못하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운 환경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화학 업황 악화에 원매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다 원하는 매각 대금을 받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대형 화학사 6개월 동안 3조1053억원 규모 매각 단행
8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최근 반 년 동안 비핵심 자산과 사업을 대규모로 매각해 현금을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국내 대형 4개 화학사(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SKC 효성화학)의 자산·사업부 매각 규모는 3조1053억원에 달한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LCLA) 지분 40%와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지분 25%를 활용해 각각 6627억원과 6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2월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지분을 979억원에 매각한 것을 포함하면 1조4106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PRS는 기업과 금융기관 사이에 체결되는 파생상품으로, 계약 기간 중 담보로 맺은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서로 교환하게 된다. 정산 시기에 기초자산의 주식가치가 매각 당시보다 높을 경우 기업이 차액을 가져가고, 가치가 낮을 경우 손실금액을 기업이 금융기관에 보전하는 방식이다.
효성화학도 지난해 12월 특수가스사업부를 계열사 효성티앤씨에 매각하면서 9200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SKC도 지난해 10~11월 자회사 SK엔펄스의 CMP 패드사업과 SK넥실리스의 박막사업을 매각해 합계 4360억원의, 한화솔루션도 지난해 10월 한화저축은행 지분과 울산 무거동 사옥 부지를 매각해 합계 338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들 화학사는 이 같이 확보한 자금 대부분으로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 구조 개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3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으나 모든 화학사가 여전히 차입금 부담이 완화되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제 이들 4개사의 총차입금(연결 기준)은 지난해 말 29조5996억원으로 집계돼 지난 2023년 25조7436억원 대비 14.98%(3조856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 4개사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모두 악화됐다. 효성화학은 특수가스사업부 매각 마무리가 늦어지면서 지난해 연말 기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가 올해 1월 이를 해소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경쟁 격화로 타격…올해도 비핵심 자산·사업 매각 지속
이 같은 재무 리스크 악화는 국내 화학사의 가장 큰 경쟁자인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격화된 탓으로 분석된다. 최근 중국 업체는 일반 화학제품 생산을 위해서 대규모로 생산 설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증설 규모를 살펴보면 국내 화학사의 생산능력의 2~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증설의 결과로 지난해부터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 과잉 국면에 진입해 국내 화학사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향후 국내 화학사가 생산원가가 낮은 중국산 일반 화학제품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국내 대형 화학사들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이차전지·첨단 산업 소재 등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결과 재무 리스크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때문에 최근 6개월 동안 국내 대형 화학사들이 비핵심 자산과 사업부를 매각해 재무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줄이는데 힘쓰고 있다. 이 같은 비핵심 자산사업부 매각은 올해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화학 업황 악화로 인해 원매자 확보와 매각가 협상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탓이다. 후한 가격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자산·사업을 매각한 화학사의 재무 리스크도 대폭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화학사들이 비핵심 자산사업을 매각해 재무 관리를 강화하고 있으나 근원적 사업 경쟁력 악화로 차입금 부담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도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화학사들의 재무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