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혁신 기술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4.13 10:40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기계항공원자력공학과 교수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기관차 법은 “자기 동력으로 주행하는 탈것(초기의 자동차를 일컫는다)은 시내에서는 시속 2마일(3.2킬로미터) 이내, 시외에서는 시속 3마일 이내로 주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시내에서는 사람이 걷는 것보다도 느리게 주행해야 한다는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법이다. 이 법이 붉은 깃발 법이라는 조롱조의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여기에 추가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에 앞서 걷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생긴 공식적인 이유는 초기 자동차의 거대한 크기로 인해 도로가 파손될 수도 있고, 지나는 말들이 놀라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대중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발굽이 없는 자동차가 오히려 도로의 손상을 덜 일으킨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말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막상 당시의 주류 운송수단인 마차에게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이것은 기존 기술과 신기술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규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 보는 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로비를 했었거나 아니면 어떤 눈치를 보느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법에서 정한 제한 속도는 1896년에 새 법이 제정되어 시속 14마일(23킬로미터)로 상향조정 될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좋은 말을 유지하는 데에 점점 비용이 많이 들게 되고 자동차관련 기술은 계속 개발되어 경제성이 더 높아지게 되면서 서서히 자동차라는 새로운 탈것에 대한 사회 대중의 수용성이 올라가게 되고 붉은 깃발 법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동차 속도 규제와 제한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는 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는 서부와 동부의 차이가 극명했다. 동부의 오래된 주인 코네티컷에서는 1901년에 영국과 비슷한 시속 12-15마일 제한속도를 도입했고 그 후로도 계속 제한 속도를 엄격하게 유지하는데 반해 몬태나, 네바다, 텍사스 같은 주에서는 제한 속도를 두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경향이 커서 지금도 제한속도가 동부에 비해 현저히 높다. 그리고 석유파동을 겪던 1970년대에 경제적인 이유로 전국적인 제한속도 시속 55마일을 도입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행이후 교통사고 사망률이 백만 마일당 4.28명에서 2.73명으로 감소하는 추가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기에 1990년대에 각 주의 자율 규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회의 수용과 규제는 언제나 이렇게 변해 왔다. 때로는 근거 없는 공포심을 자극하여 규제가 생기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생기며, 그리고 어떤 때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여 생기기도 한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가 국가의 규칙에 반영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이용해서 특정 집단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음해를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 신약, 인공지능, 로봇기술 같은 혁신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는 현대에는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었기에 과학과 합리에 근거한 대중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자력 분야에서도 혁신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한수원에서 유럽과 아시아 수출을 목표로 개발한 APR-1000에는 피동형 냉각장치가 부착되어 외부 전력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도 발전소의 안전이 보장되어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원천적으로 방지되도록 하는 신기술이 도입되었다. 펌프로 냉각수를 강제 주입하는 대신 증기를 응축시킨 물이 자연적으로 재순환하도록 하는 것인데, 강력한 펌프의 힘이 없이도 충분히 냉각이 확보되는지가 규제의 쟁점이 될 수가 있다. 만약에 “모든 원자로는 초당 1톤 이상의 냉각수 공급이 가능한 펌프를 적용하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규정이 되어 있고 규제기관이 이를 적용하겠다고 나선다면 펌프가 없는 이 혁신기술은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과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펌프의 힘이 얼마나 센지가 아니고 원자로심의 잔열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냉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냉각 성능이 충분한지, 필요한 시점에 냉각이 수행될 수 있도록 운전 규칙이 수립되어 있는지, 혹시 모를 대형 지진 등에 대비해서 어떤 대비를 하였는지 등을 규제 항목으로 삼는 것이 바른 규제이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이나 차세대원전에는 더 많은 혁신기술이 포함되게 된다. 그 달라진 정도가 매우 커서 기존의 규정집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아예 발전소 범위 밖으로 대량 방사선 누출이 불가능하도록 한다면 그런 사건에 대비한 비상계획은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이상적인 설계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반경 20-30킬로미터로 한다"라고 아예 정해서 못을 박아 두고 있으니, 아무리 좋은 혁신 기술을 개발하여도 적용이 난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붉은 깃발 법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무분별한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고, 안전망 없는 혁신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규제와 발전의 제대로 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버려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더 강력히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분간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제기관이 그런 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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