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분기 법원에 접수된 기업(법인) 파산 신청 건수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라는 '3고(高)'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의 영향으로 국내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은 탓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 조치가 시행된다면 최대 수출처를 잃고 파산하는 기업이 더욱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4년 통계 집계 이후 최악…중기 연체율 1개월 만에 0.15%p 악화
22일 재계와 법원행정처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법인의 숫자는 453건에 달해 지난해 1분기 439건 대비 3.19%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대치다. 2014년 이전에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는 법인이 많지 않았기에 사실상 올해 기록이 사상 최대치로 파악된다.
연간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지난 2015년까지 연평균 600건을 하회했으나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던 2020년 1069건으로 1000건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이후 2021년과 2022년에는 2020년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으나 2023년 1657건과 지난해 1940건을 기록해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해도 1분기와 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처음으로 2000건을 돌파해 3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올해 1월 말 기준 0.61%를 기록해 지난해 말 0.5% 대비 1개월 만에 0.11%포인트(p)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0.62%에서 0.77%로 0.15%p 더욱 크게 악화됐다.
이는 가계대출이 0.38%에서 0.43%로 0.05%p 악화되는데 그친 것과 큰 차이다. 경기 위축의 타격이 특히나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신호다.
◇환율·금리·물가 기업 활동 압박…최근엔 미국의 상호관세 우려 급증
이는 올해 1분기 환율이 급등한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1분기 동안 1430~1470원을 넘너들었다. 이는 지난해 1분기 원·달러 환율이 1310~1350원에서 움직였던 것에 비해 120원 가량 높은 수준이다. 거의 모든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원료를 조달할 경우 달러화로 결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료비가 앉아서 급증한 셈이다.
아울러 올해 2월에 2.75%로 금리가 0.25%p 낮아졌으나 여전히 금리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물가도 고공행진하고 있어 기업의 부담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분석된다.
다만 환율이나 금리는 차츰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전쟁이 향후 국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지난달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달부터는 모든 수입 자동차에 각각 25%씩 관세가 부과됐다.
지난해 한국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와 철강 관련 수출액이 각각 51조원과 4조원 규모로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3개월 이후 개별 품목이 아니라 한국에서 수출되는 모든 제품에 부과되는 상호관세도 도입이 예고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호관세가 도입될 경우 미국에 수출을 해왔던 국내 기업 상당수가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고 크게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미국 직접 수출 규모는 1278억 달러(약 182조원)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9.4% 수준에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권 관계자는 “올해 3고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파산하는 편이 이익이라고 판단한 기업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추가로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관세 전쟁까지 진행되고 있어 더욱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