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가 최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미디어 스터디에서 공유한 발제문 중 '멀티호밍 시대 방송 산업 상생 방안'.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 소비가 이뤄지는 멀티호밍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기존 대가산정 제도와 규제 체계가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멀티호밍이란 이용자가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거나 여러 개의 플랫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콘텐츠를 넷플릭스에서도 보고 유튜브에서도 소비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런 상황에서 옛 기준에 따라 콘텐츠 가격을 정하고 규제하는 방식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소비 데이터 분석 모델 도입과 같은 방식으로 기존 체계를 전면 재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멀티호밍이 주요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유통 구조가 변하고 있다. 과거 독점계약을 맺어 재방송 형식으로 콘텐츠를 송출하던 것과 달리 플랫폼이 많아지고, 중복소비가 일반화되면서 독점적 가치가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따라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이 확대되고 있다.
멀티호밍은 시청자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터넷TV(IPTV) △케이블TV 등 복수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며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상이다.
주요 해외국은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 시장 경쟁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멀티호밍을 촉진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은 플랫폼 간 전환 장벽을 낮추고, 독점 행위를 경쟁 제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영국은 시청자가 원하는 채널만 선택할 수 있는 '알라카르테 요금제'를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제도의 경우 과거의 단일 플랫폼 중심 규제 정책에 머물러 있어 이같은 시장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는 시장 변화에 따라 유통 경로를 다각화하는 반면, 플랫폼 사업자는 콘텐츠 독점을 희망해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유료방송 사업자가 프로그램 사용료를 더 많이 지불하게 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기존의 독점 가치 기준 콘텐츠 대가산정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주최 미디어 스터디에서 '해외 멀티호밍 트렌드 및 시장환경 변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태민 기자
이에 콘텐츠 대가산정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콘텐츠 소비 데이터 기반 AI 분석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는 △시청률 △시청자 선호도 △광고 수익 등을 토대로 요율을 자동 산정, 정부나 제3자가 검증하는 구조다. 산정 근거의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합리적인 대가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다.
예컨대 미국 FOX 등 주요 방송사들의 경우, 예측 AI와 생성 AI를 결합한 모델을 도입해 수백 건 분량의 재전송료 데이터를 자동 집계·분석한다. 이후 계약 조건에 따른 요율을 산정하고, 수익 흐름을 실시간 파악해 미지급 등 이슈를 탐지·조정한다.
다른 방안으로는 증분가격제(Incremental Pricing)가 제시됐다. 이는 콘텐츠의 독점 소비분에만 높은 대가를 적용하고, 중복 소비에 대해선 단가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협상력이 낮은 사업자들도 합리적으로 시장 경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최근 진행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미디어 스터디에서 “검증 시스템 도입과 함께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연간 인상률 상한제·중재 제도 등을 도입해 협상 결렬에 대한 대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재전송료·프로그램 사용료 등 산정 기준은 사업자마다 다른데, 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분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