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정전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습(사진=AP/연합)
28일(현지시간) 대낮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로 전역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천명의 관광객과 주민들은 멈춰 선 기차와 지하철에 갇혔고 일상생활에 흔히 사용하는 전화, 인터넷 등의 통신은 먹통이 되자 스페인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며 복구 작업에 나섰다. 대부분의 지역에선 전기가 다시 공급됐지만 정전 원인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AP통신, 로이터통신,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정전은 28일 낮 12시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했다.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남부 일부도 피해를 봤다. 스페인 내무부는 정전 사태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전력이 중단되자 기업들과 공장들은 업무가 중단됐고 지하철과 열차 등 다른 교통수단들도 멈춰서면서 관광객과 통행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차량 안에 갇히는 일이 속출했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약 3만5000명의 승객을 구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중교통이 끊겨 발이 묶인 사람들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기 위해 도로 위로 몰려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28일 정전된 바르셀로나의 지역 라디오 방송사에 인파가 몰린 모습(사진=AFP/연합)
정전 피해를 본 지역에선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아 도시 곳곳에선 기록적인 교통체증이 일어났고 마드리드에서는 일부 중요 건물 주변에 경찰이 대거 배치돼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해야 했다.
시민들은 또 연료와 비상식량 등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과 주유소 등으로 몰렸지만 대부분 가게에서 카드 결제기가 작동하지 않아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 지점들 앞에는 현금을 뽑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드리드 오픈 테니스 대회도 갑작스러운 정전에 경기 도중 중단됐다. 스페인 정유사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병원을 비롯한 긴급 서비스는 자체 발전 동력으로 가동했고 스페인 증시 또한 거래가 중단되지 않았다.
포르투갈도 리스본과 그 주변 지역, 북부와 남부 지역이 정전 피해를 보았다.

▲28일 정전된 마드리드의 한 ATM에서 시민들이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사진=AFP/연합)
일부 사람들은 야외로 나와 함께 음료를 나눠마시는 등 아날로그 기술이 안겨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전력은 다음날인 29일 새벽께 거의 복구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29일 오전 5시 기준 스페인 전력 공급의 92%가 복구됐다.
이번 정전은 단 5초만에 15기가와트(GW)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일어났지만 스페인 당국은 그 배경을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성명에서 “아직 정전의 원인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현 단계에서는 어떤 가설도 배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전 피해국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스페인 전력회사 레드 일렉트리카는 프랑스와의 전력망 연결이 중단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포르투갈 전력망 운영사 REN의 이사회 멤버인 조아오 콘체이카오는 “스페인 시스템에서 대규모 전압 진동이 첫 발생했고 포르투갈 시스템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전력 공급업체 E-Redes는 정전이 '유럽 전력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했다고 현지 매체에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스페인·포르투갈 당국 및 유럽 송전 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와 연락해 정전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에 “현재까지 사이버 공격의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28일 정전으로 극심한 교통체증에 빠진 마드리드(사진=AFP/연합)
일각에선 재생에너지에 대한 스페인의 의존도가 높아 정전이 발생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로,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이 차지하는 발전 비중은 43%로 집계됐다.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3%, 20%에 불과한데 스페인 정부는 가동 중인 마지막 선탄발전소 1기를 올해 폐쇄해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유럽에서 이 규모의 발전 시스템 붕괴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번 사태를 통해 재생에너지에 더 의존하는 전력망의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정부는 향후 10년에 걸쳐 원전의 점진적 폐쇄를 추진 중인데 이번 정전 사태로 원전 폐지 결정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