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LNG 선박.
글로벌 탈탄소 흐름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LNG(액화천연가스)선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다. 고난도 LNG선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계의 실적도 동반 상승하고 있지만, 중국의 거센 추격과 원가 부담, 인력난 등 구조적 리스크도 함께 존재한다.
업계는 암모니아 추진선등 차세대 친환경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조선 강국'의 자리를 공고히할 방침이다.
19일 영국 로이드선급이 최근 발간한 '연료에 대한 고찰: LNG'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LNG 이중연료 추진 선박 발주량은 356척으로 2021년 150척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선종별로는 LNG 운반선을 포함한 가스운반선이 697척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컨테이너선 152척, 유조선 150척 순이다.
LNG가 다시 각광받는 배경에는 환경적 이점과 경제성이 있다. LNG는 기존 석유계 연료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20% 줄이고 질소산화물은 90% 이상, 황산화물·미세먼지는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감축한다.
또 전 세계 273개 항구에서 LNG 공급이 가능하지만, 메탄올 공급 항구는 29곳에 불과하다. '그린 메탄올'은 LNG의 두 배 가격으로, LNG가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다.
로이드선급 분석에 따르면 2050년까지의 총 운영비는 LNG가 메탄올보다 약 30%, 암모니아보다 약 10% 낮다.
더불어 국제해사기구(IMO)는 2027년 탄소세 도입을 논의하면서 LNG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온실가스 배출량 t당 100달러의 탄소세가 부과될 경우, 2050년까지 해운업계가 연간 최대 600억 달러(약 88조원)를 부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LNG와 같은 친환경 연료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LNG의 상승세는 국내 기업들의 수주 잔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해운 분석기관 베슬스밸류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국내 조선소 수주 잔고의 약 37%가 이중연료 추진 선박으로, 규모는 약 104조8866억원(713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는 약 80%가 이중연료 사양을 선택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LNG-RV, FSRU, FSU, FPSO 등 LNG 관련 해양 설비 분야에서도 세계 최초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고망간강 연료탱크, 부분재액화시스템(PRS) 등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2025년 2월 기준 전 세계 LNG 운반선 시장에서 약 23.4%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도크에서 최대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체계와 연간 25척의 LNG 운반선 생산 역량 그리고 미국의 화석연료 정책 변화에 따른 추가 수혜 기대 등으로 미래 성장성도 높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월 아프리카 선사와 1만8000㎥급 LNG 벙커링선 4척(5383억원 규모)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선박들은 울산 HD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되어 2028년까지 순차 인도될 예정이다.
LNG 벙커링선은 '선박 대 선박(STS)' 방식으로 해상에서 LNG를 충전해주는 선박이다. 기존 항만에 LNG 공급·저장 시설을 추가로 설치할 필요 없이 대량 충전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가장 선호되는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HD한국조선해양은 스마트 조선소 구축, 친환경 선박 R&D 투자 등으로 중형선박 분야의 세계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선박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24년 1월 오세아니아 선사와 LNG 운반선 1척(약 3800억원)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LNG 운반선 수주 잔고는 84척(약 191억달러)에 달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조선사 중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뿐 아니라 암모니아 운반선, 고부가가치 해양 프로젝트 중심의 수주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AI 기반 생산관리 시스템과 로봇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선박 설계·건조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생산 혁신은 고부가가치 LNG선 시장에서의 한국의 우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호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중국 조선소들이 대량 LNG선 수주에 성공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세계 LNG선 신조 발주 109척 가운데 한국이 68척, 중국이 41척을 수주했다. 점유율로 환산하면 한국이 약 62%, 중국이 약 38%를 차지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중국의 점유율이 2028년 3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로는 2024년 이미 38%에 도달하며 예상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아직 품질·납기 등에서 경험 부족이 있지만, 국가적 지원과 글로벌 선급의 협력으로 격차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구조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철강 등 원자재 가격 변동, 환율 불안 등으로 원가 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또 조선업 인력 미충원율이 14.7%로 전 산업 평균의 2배에 달한다. 내국인 기피와 임금·근로조건 문제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급증하면서 품질·안전 이슈와 비정규직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이 같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부와 업계는 청년 인재 양성, 외국인 근로자 교육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는 우수 인재 확보와 더불어 근로환경 개선, 장기적 인력 양성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조선업계는 '포스트 LNG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올해 암모니아 추진선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각종 인증과 실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글로벌 선주사들이 친환경 선박 발주를 확대하고 있어 한국 조선업계도 관련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머스크, MSC 등 주요 글로벌 선사들은 이미 암모니아·메탄올 추진선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 중이다.
정부도 다방면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친환경 선박, 제조 시스템 고도화, 인력 양성, 금융 지원 등 전방위적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