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시절 간담회에서 “원자력발전소 같은 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폐기물 부담을 다 후손에게 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예고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체코 원전 수주전이 막판 고비를 맞고 있다.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오는 8월 계약 마무리를 목표로 막판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권 교체에 따른 변수와 국제 경쟁 심화, 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외부 시선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항 앞바다에서 대규모 석유·가스 매장량을 찾는 동해 심해가스전(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사업도 위기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사업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해외 투자가 얼마나 충분히 들어오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최근 본지와의 대화에서 “체코 총선 일정 때문에 계약이 10월 이후로 밀렸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본인의 임기 내에 체코 원전 계약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교수 출신인 황 사장이 정치색이 옅고 정권을 가리지 않는 중립적 인사라는 점에서, 계약 마무리까지 임기 연장 또는 유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에너지 외교 신뢰 확보를 위해서는 협상을 주도해 온 인물이 계속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대선 과정에서 “원전은 대형사고 발생 시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 있다"며 원전 확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점이, 해외 원전 발주국들 사이에서 정책 연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세계원자력공급망회의(World Nuclear Supply Chain)에서 프랑스 EDF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가 원전에 덜 협조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이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적 협력에 민감한 체코나 EU 당국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특히 프랑스 EDF는 유럽연합 차원의 공급망과 정책 연계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어, 정책적 메시지의 일관성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안팎에선 체코 원전 사업이 정치적 이해를 넘는 국가 전략사업인 만큼, 이재명 정부도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국내 탈원전 기조와는 별개로 해외 원전 수출은 적극 추진한 전례가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UAE 바라카 원전 수출 등을 지원하며, “수출형 원전산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체코 원전도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했다.
체코 원전 수주는 지난달 7일 체코전력공사와 한수원이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전날 현지 법원이 입찰경쟁사이던 프랑스 EDF의 입찰 절차에 대한 소 제기에 따른 계약 체결 중단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중단됐다.
표면적으로는 체코 법원의 결정에 본계약 체결 여부가 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느냐가 최대 관건으로 분석된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남은 변수는 협상 시점과 정부의 외교적 지원 여부다. 한수원이 시간 내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새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힘을 보탤지가 체코 원전 수주의 성패를 가를 열쇠"라며 “해외원전 수출은 여야,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한국의 경쟁력을 세계무대에 내세울 기회인 만큼 새 정부도 적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의 심해 앞바다에서 대규모 석유·가스 매장량을 찾는 동해 심해가스전(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사업은 이재명 정부 출범을 맞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정부가 지난해 6월 첫 국정브리핑 주제로 삼을 만큼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올해 2월 첫 시추에서 경제성 있는 매장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추비만 1000억원이 넘게 투입됐다. 당초 석유공사 505억원, 정부 505억원을 조달할 예정이었으나, 국회 예산심의에서 민주당이 505억원 중 497억원을 삭감하면서 거의 전액을 석유공사가 부담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당시 민주당 당대표는 “국가가 AI 연구에 필요한 최고사양의 GPU 3000장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을 사기 시추에 썼다"고 지적하며 “해외 기업들은 수만 장의 GPU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수천 장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최고사양 GPU 3000장을 사서 AI 연구에 투자했다면 한국의 AI 연구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냐"고 동해 심해가스전 사업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2차 시추에도 비슷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전 발언을 감안하면 추가 정부 지원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석유공사는 탐사 자료 및 1차 시추 자료를 토대로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입찰을 진행 중이다. 입찰은 이달 20일 마감하며, 우선협상대상자 1곳을 선정한다. 이 기업이 충분한 투자를 한다면 큰 정부 지원 없이도 2차 시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는 곧 지분을 뜻하기 때문에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을 시 과실을 잃을 수 있다.
자원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 가스를 소비하는 우리나라가 자원 매장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차 시추에서도 경제성 있는 매장량이 도출되리라는 보장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를 마땅히 해야 한다. 그것이 자원 빈국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