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두코바니 원전.
체코 원전 수주가 법정 싸움으로 변질됐지만, 실상은 국가간 외교전 싸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업계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4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체코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약 24조원 규모의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입찰에서 한국 한국수력원자력, 프랑스 EDF, 미국 웨스팅하우스 중 한국의 한수원을 택했다. 당초 올해 3월까지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양국의 정치 상황으로 지연됐고 드디어 5월 7일 체결하려고 했으나, 전날에 체코 법원이 프랑스 EDF가 제기한 입찰 절차 문제에 따른 체결 중단 가처분을 받아들이면서 보류된 상태다.
해당 소송은 아직 마무리 기한이 불투명하며, 체코 정부 입장에서도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사업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체코 현지의 주요 에너지 전문 매체들은 본지에 직접 연락을 취해 “한국의 대선 결과가 계약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보내왔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현 정부처럼 원전 수주에 적극적인 외교·산업 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중심이었다. 이는 대형 원전 사업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적 전략산업이자 외교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우려는 감지되고 있다. 본지는 최근 보도에서 “체코 원전 계약은 단순한 수주 경쟁을 넘어, 유럽 내 전략적 입지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외교전"이라며 “차기 정부가 지금처럼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프랑스와 유럽의 압박 속에서 한국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계약은 오는 8월 안에 마무리될 것"이라며, “체코 측과는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체코의 대통령 선거와는 무관하게 본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 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원전 수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체코 현지에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정치적 연속성과 정책 신뢰도를 중시하는 기류가 강하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자국 공급망 보호와 프랑스 기업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만큼, 한국으로선 정권 이양기 속 명확한 메시지와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또한 체코 정부는 원전 사업을 자국 석탄 지역의 전환 프로젝트로 활용하며, 고용 창출과 지역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단순 시공 능력 외에도 현지화(local content) 전략과 지속가능한 산업 협력 모델을 제시해야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결국 체코 원전 수주전은 기술 경쟁만이 아니라 정치·외교·산업 정책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국제 복합전이다. 차기 정부가 어떤 에너지 외교 노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수주 가능성과 향후 원전 수출 전략 전체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체코 사례는 한국의 원전 산업이 직면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