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 부근 샤흐런 정유단지 석유 저장소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양국은 13일 이후 사흘째 미사일 등을 쏘며 교전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가 가뜩이나 미국 정부의 일방적 관세 정책과 미국-중국 무역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디커플링(비동조화) 등 위기 상황에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까지 엎친데 덮친격 악재가 겹치는 '대외불확실성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와중에 중동에서 이스라엘-이란이 충돌하며 유가·환율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쌓은 '관세 장벽' 높낮이가 계속 바뀌고 있어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미국에 맞선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등 전략을 구사하면서 '공급망 리스크'까지 부각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국제 유가 방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해외원유 수송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부 촉각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급한 13일(이하 현지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장 중 한때 전장 대비 14% 이상 뛰었다. 마감가는 7.26% 오른 금액이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이후 하루 기준 최대 변동폭이다.
유가가 갑자기 오르면 항공·해운업계는 연료비 부담을 걱정하게 된다. 단순 계산하면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대한항공 같은 항공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3억3000만달러(약 4500억원)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해운업계는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최악 사태로 치달을 경우 항로에 영향을 받을까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최근까지도 해운사들은 미국과 예멘 후티반군 간 충돌 여파로 홍해 항로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 업종은 나프타 등 원재료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현지에 진출해 있거나 중동 공략을 고민 중인 건설업계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유사와 자동차 제조사들은 유가가 급등할 경우 내수 소비여력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가 직면한 대외 불확실성 3중고 내용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산업계를 긴장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국내기업들이 마케팅 활동을 조심스럽게 전개하거나 공장 생산을 일부 재개하는 등 러시아 재진출 준비에 착수했는데 전쟁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빈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채우고 있어 결단이 늦어질 경우 시장 자체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도 조성되고 있다.
러-우크라 전쟁 이전인 2021년 기준 삼성·LG전자의 러시아 법인 매출액은 각각 4조4000억원, 1조원 가량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25% 안팎 점유율로 현지 1위 업체 자리를 지켜왔다.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재구매(바이백) 할 수 있는 기한은 올해 말까지다.
오락가락 트럼프發 관세정책에 주요 통상국들 '무역 불확실성' 고조
미국발 관세 전쟁도 산업계가 직면한 악재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이 어떤 국가·업종에 장벽을 쌓을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최대 고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9일 기본관세(10%)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90일간 유예한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11일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는 현지 기자들이 상호관세 유예기한을 연장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설상가상 품목별 관세가 우리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오는 23일부터는 냉장고, 세탁기 등에 추가 세금을 붙이기로 했다. 50% 철강 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철강 파생제품' 명단에 일부 가전 제품을 추가한 것이다.
삼성·LG전자는 이들 중 일부 품목을 멕시코 공장 등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양사 모두 미국 내 공장으로 물량을 이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찾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생산량을 늘려 관세를 회피한다는 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해당 관세 부과 시기는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는 등 공급망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산업계가 직면한 대외 불확실성이다.
로이터통신은 14일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런던 무역 협상 관련 수출 통제가 '미해결'로 남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술 수출통제를 완화하고, 중국은 각종 제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수출 통제를 풀기로 합의한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中, 미국 고관세에 핵심소재 공급 제한 '희토류 무기화'…첨단산업 비상
중국은 전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 가공 기준으로는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포드 공장은 희토류 자석이 부족해 지난달 공장을 잠시 멈춰세우기도 했다.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도 '제2의 요소수 사태' 등을 겪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희토류 외에도 이차전지, 태양광, 반도체 등 일부 소재·부품은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이 각종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체력을 기르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간재 생산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친환경차, 이차전지 같은 분야에서 기술 독립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