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1987년 봄, 사법연수원 학회실. 법전을 펴놓고 토론하던 젊은 연수생들 사이에서 유독 또렷한 목소리로 불합리함에 맞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소년공 출신의 '비주류' 변호사 지망생.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정 의원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총동창회 주최 '송강포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38년 인연을 풀어놓았다. 정 의원은 원조 친명계 핵심인 '7인회'의 좌장이자, 이 대통령의 정치 여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 “'세금값'을 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자
이날 그는 '정치인 이재명'을 한마디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며, 도그마나 이념에 갇히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선출된 공직자로서 '세금값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굉장히 투철하다"며, 이재명식 행정의 출발선에 국민 세금의 가치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정책들을 밀어붙였던 것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무상교복, 무상산후조리 등으로 확장된 이른바 '무상 시리즈'는 매번 언론과 야당의 뭇매를 맞았다. “포퓰리즘이다", “재정 낭비다"란 비판 앞에서도 단호했다. “밥을 굶는 아이가 있는 나라에서 '세금값'을 논하는 건 순서가 잘못된 겁니다." “밥은 공짜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아이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밥을 굶어선 안 됩니다."
정 의원은 그 결단력의 원천을 소년공 시절의 분노와 연민에서 찾았다. 이 대통령은 경북 안동 예안면 도촌동,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중학교 대신 공장에 들어갔다.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 통금 전까지 버티며 쪽잠을 자고, 어린 이재명은 공장에서 작업반장의 부당한 폭력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정 의원은 “약자였지만 불의에 맞섰어요. 그게 이 대통령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단호하게 맞서 싸워왔습니다"고 말했다.
그가 받은 월급은 5만2900원. 성장판이 눌려 팔이 뒤틀릴 정도로 다쳤지만 산재 보상도 받지 못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휘감기는 사고를 당해도 다음 날 다시 현장으로 갔다. 정 의원은 “자기 어린 시절을 하나의 '추억'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연민의 감정을 갖고 공감하면서 거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 역량이고 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 점 때문에 제가 (이 대통령을) 도왔습니다."
◇ “제가 이제 을(乙)입니다"…“'오다 노부나가'에 가까워"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을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에 비유했다. “결단이 빠르고, 상황 판단이 정확합니다." 이 말은 단지 비유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26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가졌다.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위한 자리였다. 그는 먼저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 머리를 숙였다. “제가 이제 을이라, 각별히 잘 부탁드립니다."
연설이 시작되자,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방향성과 함께 추경의 필요성, 예산의 사용 목적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연설을 마친 이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을 향해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본회의장을 나서며 국민의힘 의원석으로 걸어가 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일부 의원들과는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추경안 시정연설이 끝난 후 용산 대통령실 앞 골목상권을 찾았다. “골목상권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민생이 삽니다"라며 “국회로 넘어간 추경안이 통과해 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경제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 있는 여러 불합리한 규제를 조정하는 데 있어 이재명 대통령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같은 국정 과제도 이른 시일 내 현실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끝으로 “이재명이 부패한 사람처럼 인식되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제가 국회의원 선거에 7번 나갔지만, 이 대통령은 단 한 번도 후원금을 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국회 예결위원장을 할 때도 '취임 축하' 화환을 안 보낸 유일한 시도지사였어요." 정 의원은 “그만큼 권력 주변의 허례허식에 무관심하고,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