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전쟁, 중국산 제품의 품질·물량 공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유가·물류 불안, 요동치는 환율, 내수 경기 위축. 국내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는 대내외 요소들이다. '복합위기'에 허우적대는 재계가 설상가상 '모래주머니'까지 발목에 찰 처지에 놓였다. 정부·국회가 각종 반(反)기업성 정책과 규제를 쏟아내면서다. 노조법과 상법은 기업에 불리하게 개정되고 법인세는 오른다.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은 보완 대신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청년 고용이 줄어든다“는 재계 목소리는 허공을 떠돌 뿐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사면초가에 빠진 기업의 상황을 진단하고,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각종 규제 및 법안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정치권이 기업들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52시간 제도 현실화 등 기존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던 사안들도 정부·거대여당이 권력을 장악한 뒤 수면 아래로 내려앉고 있다.
13일 정재계에 따르면 대선 이전 여야 논의가 활발했던 '반도체 특별법'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외면 받고 있다.
특별법은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노사 합의로 주52시간 상한제를 초과해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법안이 통과돼야 연구원 등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 노동계는 산업재해 증가, 다른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고 통상 불확실성이 높다는 게 특별법 논의의 시작점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에 밀리고 중국 기업들 추격도 거셌기 때문이다. 각국이 자국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자국우선주의'가 일반화된 시기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해당 이슈를 이미지 개선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2월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토론회'를 열고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 언급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쟁국들은 기업에 노골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인세 인상,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 추진 등 족쇄만 계속 채우고 있다"며 “아무리 대선 전이라지만 우리나라 경제 기둥인 반도체 업계를 지원하는 법안을 '정치 쇼' 용도로 활용할 줄은 몰랐다"고 일침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글로벌 노동시간 축소 추세" vs. “경쟁국 노골적 기업지원, 한국만 예외"
윤석열 정부 당시 추진했던 '노동개혁' 역시 역주행하고 있다. 경제계는 한국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시장 정상화를 더 늦추면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현 정부와 여당은 '귀족노조'가 압도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와중에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경우 부를 독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SK하이닉스 노조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는 이유로 1인당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달하는 성과급 보상을 요구하고 있따. 올해 임금협상 교섭은 결렬을 선언했다. 이들은 올해 초 기본급 1500%의 초과이익분배금을 받고 격려금 차원에서 자사주 30주(600만원 상당)을 받았다.
정년연장과 함께 논의돼야 할 직무·성과급제도 경제계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숙원인 상속세 인하 논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전망이다. 상속세가 주요국 대비 지나치게 높아 기업의 장기적 안전·지속성, 중견기업 경영권 유지 등에 어려움이 많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 정부·여당은 확장적으로 재정을 사용하되 재원은 기업 및 고소득층에서만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제계는 화물차 안전운임제 시행을 3년 한시 연장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것에도 유감을 표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을 위탁하는 기업인 화주와 운송사 사이 '안전운송운임'을, 운송사와 화물차 기사 사이에는 '안전위탁운임'을 정해 강제하는 게 골자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시행됐지만 윤석열 정부때 일몰 시한이 지나면서 2022년 폐기됐다. 개정안에는 내년 1월1일부터 2028년 12월31일까지 3년 일몰제로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지난달 23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경제계는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위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시행 당시 화물운임 급등과 시장 왜곡 등 여러 부작용을 초래한 바 있기에 향후 신중한 제도 운영을 당부한다"며 “무엇보다 제도의 시행에 앞서 시장 참여자들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모든 경제주체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운임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