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오름세로 거래를 시작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스크린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단기 배당 수익을 노린 '배당락 전략'과 호실적 종목에 대한 집중 매수다. 레버리지·곱버스 같은 투기성 거래는 빠르게 식어가는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 자금이 배당과 실적이라는 두 갈래 축으로만 움직이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월 배당기준일이 있었던 SK하이닉스·현대차 등 코스피 38개 종목에서 외국인은 배당락일 하루 전 평균 6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기관 역시 같은 날 24억원을 담았다.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거래일에 사들이고, 배당락일에는 곧바로 내놓는 전형적인 '배당락 전략'이다.
실제로 이들 종목의 주가 움직임도 뚜렷했다. 배당락일에는 평균 –1.07% 떨어졌고, 배당기산일에는 평균 0.41%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의 하루 평균 등락률이 –0.09%였던 점을 고려하면, 배당 이벤트로 인한 등락 폭이 훨씬 컸다. 분기·중간배당처럼 배당 효과가 크지 않은 시기에도 주가가 크게 흔들린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큰 흐름은 다소 달랐다. 8월 한 달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1조8000억원을 순매도하며 3개월 연속 이어온 순매수 기조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개별 종목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국인은 실적 개선이 두드러진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비중을 늘렸다.
대표 사례가 자동차 부품사 티에이치엔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티에이치엔 주식 50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지분율을 2.34%에서 9.14%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주가는 68.5% 급등했다.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늘어나면서 티에이치엔의 2분기 매출은 2525억원,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9.8%, 94.9% 증가했다.
△STX엔진 △HD현대에너지솔루션 △LG CNS △이수페타시스 등도 외국인의 매수세가 집중된 종목으로 꼽힌다. STX엔진은 선박용 발전기 엔진과 방위산업 부문이 호조를 보이며 2분기 영업이익이 53% 늘었고,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원가 개선 효과로 영업이익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LG CNS와 이수페타시스는 인공지능(AI) 산업 호황에 힘입어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자 외국인 수급이 몰렸다.
반면 레버리지·곱버스 거래는 급격히 위축됐다. 대표적 레버리지 ETF인 KODEX 레버리지의 8월 일평균 거래대금은 5087억원으로 전월 대비 24% 급감했다. 곱버스 상품인 KODEX 선물인버스2X도 같은 기간 약 11% 줄었다. 증시 상승세가 꺾인 7월부터 거래대금이 줄기 시작해, 불과 두 달 만에 관망세로 돌아선 셈이다.
국내 증시 전체 거래 규모도 감소세를 보였다. 6월에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2조원을 넘으며 전월 대비 45% 넘게 늘었지만, 7월에는 15% 감소했다. 8월에도 다시 18% 줄며 15조원대까지 떨어졌다. 한미 간 관세 합의, 정상회담,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통과 등 호재와 악재가 겹친 가운데,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한 결과다.
결국 투자자들은 박스권 장세에서 배당락 이벤트와 실적주라는 두 갈래 선택지로 모이고 있다. 투기적 매매가 사라진 자리에는 '배당으로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기관·외국인'과 '실적 개선에 올라탄 종목만 골라 담는 외국인'이 남았다. 박스권 장세가 길어질수록 배당과 실적이 증시 변동성을 주도하는 힘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같은 박스권 장세에서는 단기 이벤트나 테마보다 배당과 실적이 뒷받침되는 종목 위주로 수급이 쏠릴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자금이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종목 장세 성격은 한동안 더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