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박성준

mediapark@ekn.kr

박성준기자 기사모음




4명 외국인 수색이 ‘한국인 무더기 구금’…“한미관계 시험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07 13:19

美 이민당국, 현대車-LG엔솔 합작공장 건설현장 단속

총 450명 체포…한국인 300여명 구금

美 법원 영장, 히스패닉계 4명 직원 수색 대상

韓 대미투자 약속, 정의선 방미 앞두고 이뤄져

미국 이민 단속 당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단속 모습 공개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의 한국 대기업 공장을 대규모로 단속해 한국 국민이 무더기로 체포되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으로 미국 내 사업 환경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주미대사관과 주애틀랜타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사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였다.


이로 인해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HL-GA 베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 250여명이 구금됐다. 협력사 소속 인원은 대부분 한국인으로, 정확한 인원 및 국적은 아직 확인 중이다. 내년 완공을 앞두고 공장 내 전력 설비 설치 등 막바지 작업을 위해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선 단속된 인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체포된 직원 상당수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자 수용시설에 구금됐다. 체포된 한국인들의 경우 B1, B2와 같은 단기 방문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제)로 미국에 입국해 법률상 금지된 근로 행위를 한 경우로 추정된다.


당국은 이번 단속이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최대 규모 단속"이라면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이민 단속이 아니라 장기 내사를 거친 단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 단속 영상 공개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조지아 남부지법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법인 공사 현장에 발부한 영장에선 안드레이나 푸엔테스-토바르, 케빈 사발레타-라미레스, 데이비드 사발레타-라미레스, 훌리오 곤잘레스 알바라도 등 히스패닉계로 추정되는 외국인 직원 네 명이 대상이었다. 네 명을 대상으로 한 수색이 300여명의 한국인 체포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슈랭크 조지아·앨라배마주 담당 HIS 특별수사관은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넘겨졌다"고 했다.


이번 단속은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약속하며 해외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구축을 위해 '관세 폭탄'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민자들이 미국 국민들의 일자리를 뺴앗는다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불법 이민 단속 작전을 벌여왔다. 최근 뉴욕에서 식품 가공 공장에서 직원 4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백악관에서 “난 그 사건에 대해 (이민단속 당국의) 기자회견 직전에야 들었다"며 “내 생각에는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 당국이 자국 내 대규모 투자에 나선 해외 기업을 상대로 이 같이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실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달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오토모티브 뉴스 콩그레스'에 참석할 예정인 와중에 이같은 단속이 실행된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4년 동안 미국에 26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규모 이민 단속이었다. 이에 관세정책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민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수록 악화하는 미국 내 사업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이민자 단속으로 제조업 부활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기차 배터리 등의 공장들은 첨단 기술과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데 현지에서 당장 고용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의 이민자 단속이 확대되면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생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짚었다.


한국인 구금된 미국 이민 당국 시설 내부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된 한국인 300여명 중 대부분이 수감된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설의 샤워장. 이 사진은 2021년 11월 진행된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감사 당시 촬영됐다.

주요 외신들은 한미 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민단속으로 한미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제목의 기사로 “이번 이민 단속은 한국 기업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미국 내 사업 운영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 체포는 한국 정부 당국자와 현대차를 당황하게 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가까운 동맹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WSJ은 현대차가 지난 3일 '미국 내 월간 판매량이 8월에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호실적을 발표할 당시에 미 당국이 이미 수색영장을 확보하고 있었다고도 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미 양국은 8월 정상회담을 했고 한국은 대미 투자 확대를 약속했지만, 경제 협력 기운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구금된 이들의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한 영사 면담을 시작했다.


주애틀랜타 총영사관 소속 영사는 6일(현지시간) 오전 9시부터 포크스턴에 있는 구치소에서 수감된 한국인들을 만났다. 영사는 면담을 통해 기본적으로 인도적 문제나 불편함이 없는지 확인하고, 미국 측에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오후에는 조기중 총영사가 시설을 방문해 시설 운영자 측을 면담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번 주 중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에 대한 한미 간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이 이번 주에 방미할 경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돼선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 조속한 석방을 위한 협조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