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사회에 마약 거래가 늘자 정부가 최첨단 마약 탐지 기술개발에 나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가 날로 늘어나는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마약이 들어오는 길목인 항구에서 최첨단 기술로 이를 탐지해내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이 사업이 시작부터 삐그덕대고 있다.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이 실증과제 수행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사유가 발생하면서 참여기관들이 절차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과제 입찰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세청은 지난 7월 11일 '2025년도 관세행정 현장 맞춤형 기술개발 2.0 사업 신규과제'를 공고했다. 과제는 총 4개이며, 총 연구비는 약 184억원이다.
과제 목적은 마약 탐지기술 개발이다. 첫 번째 과제인 '컨테이너 구조공간 은닉물품 적발기술 개발'은 항구로 들어오는 컨테이너 안에 숨긴 마약 등 의심품목을 직접 수색하거나 파괴하지 않고도 X-레이 또는 CT 기술을 이용해 탐지해 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전체 과제 중에 핵심이다. 이 과제에만 가장 많은 84억원이 배정됐다.
이 탐지기술이 효과를 인정받아 전국 단위로 구축된다면 총사업비는 1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단속된 마약사범은 2000년 1만304명에서 2024년 2만3022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마약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고자 마약이 주로 들어오는 루트인 항구에서 마약을 탐지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세청의 '2025년도 관세행정 현장 맞춤형 기술개발 2.0 사업 신규과제' 수행기관 선정 과정에서 전문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발표자료 제출 안내를 하면서 제출방법으로 범정부통합연구지원시스템인 'IRIS 및 이메일 제출'을 고지했다. 자료=제보자

▲이번 연구사업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커스텀즈랩2.0 사업단은 자료 제출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참여기관들에 '전산시스템 오류'로 IRIS 등록이 되지 않으니, 자료를 개인 이메일로 제출하라고 고지했다. 자료=제보자

▲커스텀즈랩2.0 사업단은 자료 제출 마감시간을 오후 12시에서 4시로 1차 연장했고, 이어 다시 6시로 2차 연장했다. 자료=제보자
자료 제출 마감 몇시간 앞두고 석연찮은 연장
이 사업은 한국연구재단이 전문기관으로서 총괄관리하고, 커스텀즈랩2.0 사업단이 주관연구개발기관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재단은 과제를 수행할 1곳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발표평가 시간을 가졌다. 그에 앞서 18일 오후 12시까지 발표자료를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인 IRIS와 커스텀즈랩2.0 사업단 부단장의 개인 이메일로 제출하도록 했다.
그런데 18일 제출 마감시간을 몇 시간 앞두고 석연찮은 일이 발생했다.
오전 9시 41분에 커스텀즈랩2.0 부단장은 자기의 개인이메일 계정을 통해 참여기관들에 “현재 전산시스템 오류로 발표자료 전산시스템 등록이 되지 않으니, 금일 12시까지 이메일로 발표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공지했다.
부단장은 당초 제출마감 시간인 12시가 지난 13시 49분에 다시 개인이메일 계정으로 공지를 통해 “현재 발표자료 전산시스템 등록이 가능하오니 금일 16시까지 발표자료를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마감시간을 한 차례 연장했다.
부단장은 또 다시 16시 30분에 개인이메일 계정으로 공지를 하면서 “전산시스템상 발표자료 등록시간을 아래와 같이 연장하오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존:금일 오후 4시→변경:금일 오후 6시"라고 전하며 마감시간을 또 한 차례 연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모 정부 출연연이 과제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참여기관들은 마감시간을 두 차례나 연장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며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본지가 취재한 결과 자료 제출 마감 당일에 IRIS 시스템의 오류는 없었다.
IRIS 시스템 운영 담당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일 시스템 오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저희가 연구재단에 확인해 본 결과 선정 평가위원을 위촉해야 하는데, 시스템상 일정이 재단에서 생각한 것보다 지연되면서 참여기관들에 편의상 사유를 전산시스템 오류로 고지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이어 “저희도 마감시간 연장 사유를 시스템 오류라고 고지했다고 해서 당혹스럽다"며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워서 참여기관들도 알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커스텀즈랩2.0 측도 IRIS 전산시스템 오류는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규정은 모두 지켰다는 입장을 보였다.
커스텀즈랩2.0의 정 모 부단장은 “당일 IRIS에 업로드할 것이 있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마감시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고, 고지를 전산시스템 오류라고 표현한 것이었다"며 “저희가 마감시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은 없다. 이번 수행기관 선정 이후 이의신청 기간 동안에도 신청 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기관들은 여전히 마감시간 연장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당일 IRIS 시스템에 이상이 없었던 것이 확인됐고,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사전에 고지한 제출방법에 이메일로도 제출할 것을 알렸기 때문에 마감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과제에 참여한 A기관의 한 관계자는 “예정된 마감시간에 IRIS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아무런 장애가 없었는데, 커스텀즈랩2.0 측에서 시스템 접속 오류를 마감시간 연장 사유라고 고지해 와서 의아스러웠다"며 “또한 사전에 고지된 자료 제출방법에도 IRIS와 이메일로 모두 제출할 것을 알렸기 때문에 설사 IRIS 시스템에 이상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감시간을 연장할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구비는 84억원이지만, 잠재적 규모는 1000억원 이상…정부 과제 신뢰성 높일 필요
탈락한 참여기관들이 이 문제를 쉬이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연구과제의 사업비는 84억원이지만 탐지기술이 인정을 받아 전국 단위로 구축되면 총 사업규모는 1000억원을 훌쩍 넘는 잠재적 대형 사업이기 때문이다.
A기관 관계자는 “이번 연구과제 선정에 5개 컨소시엄이 참여했고, 한 컨소시엄당 평균 5개 기관으로 구성됐다고 보면 25개 기관이 이번 과제 선정에 사활을 건 셈"이라며 “이처럼 중대한 사업에서 중립성, 신뢰성이 중요한 절차를 아마추어식으로 대충 처리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되고, 향후 정부 과제 선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건을 계기로 정부 연구과제 수행기관 선정에 있어 절차를 보다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기관 관계자는 “마감시간이 연장되는 과정에서 참여기관에 전화 한통 없이 오로지 이메일로만 고지가 됐다. 이메일을 들여다보지 못한 곳은 이 사실도 몰랐을 것"이라며 “정부가 객관성, 투명성을 위해 IRIS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굳이 이것을 쓰지 않고 그냥 개인 이메일로 절차를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번 사업에서 드러난 만큼, 좀 더 절차를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