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여헌우

yes@ekn.kr

여헌우기자 기사모음




[韓中 세탁기 전쟁] 기술 장벽 낮은 세탁기 시장, 韓 기업 ‘M&A 전략’ 고민할 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30 09:46

[기자의 눈] 글로벌 시장 누비는 中 자본···현지 기업 적극 인수

‘메이드 인 차이나’ 이미지 벗고 도약···韓은 삼성·LG뿐


산업부 여헌우 기자.

▲산업부 여헌우 기자.

“여기에 오는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중국 세탁기 같은 건 찾지 않습니다. 용량이 크고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아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버뱅크 인근에 있는 대형 주택·가전제품 매장 로우스(Lowe's) 직원이 한 말이다.


그는 중국산 가전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추천 브랜드로 LG전자와 제너럴일렉트릭(GE)의 고급 버전 Profile을 꼽았다. 이 직원은 GE에 대해 '전통 미국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40대 백인인 그의 말투에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중국 하이얼이 2016년 GE 가전사업부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일본 도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자제품 매장 '요도바시카메라'(Yodobashi Camera) 아키하바라점에서 일하는 한 영업사원은 한국 제품 인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일본인들은 자국 브랜드 제품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로 위에 토요타·닛산·혼다 차가 많이 보이는 것처럼 가정에서는 파나소닉, 히타치, 샤프, 도시바 등 세탁기를 대부분 쓴다"고 말했다. 샤프가 대만 폭스콘, 도시바가 중국 메이디에 팔렸다는 사실은 모르는 눈치였다.




글로벌 세탁기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은 단연 삼성전자와 LG전자다. 중국·일본에 발을 못 붙였다는 한계가 있지만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압도적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트랙라인(Traqline)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미국 세탁기 시장 브랜드별 판매 순위에서 LG전자(21.1%)와 삼성전자(21%)는 GE(18%)·월풀(15%)을 앞서고 있다.


하이얼, 메이디, 하이센스, TCL 등 중국 기업들은 그간 '저가 공세'를 펼쳐왔다. 소득 수준이 낮은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보이며 몸집을 키우는 식이다.


문제는 중국의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수 시장에서 실력을 키운 뒤 해외에 진출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출하량 기준으로 보면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속속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여기서 축적한 자본으로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 대표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GE와 도시바를 '국산'이라고 믿는 소비자들이 상당하다는 점은 중국산 '자본 공세'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인들도 벤츠를 '독일차'라며 구매하지만 그 돈 중 일부가 중국 베이징차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세탁기는 TV나 스마트폰에 비해 기술 장벽이 낮은 편이다. 인구가 많아 성장가능성이 높은 나라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기 힘들다는 특징도 있다. 제품이 무겁고 각국 관세율도 높아 다양한 곳으로 수출하기도 부적합하다.


이런 상황에 한국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분야가 인수합병(M&A)이다. 신흥국 내 인기 있는 브랜드들을 인수해 저가 제품 시장 점유율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GE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들이며 인지도 제고에만 신경 쓰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허를 찌를 수 있다.


기술만으로는 시장을 지킬 수 없다. 자본이 투입된 M&A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세탁기 전쟁'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1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