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발전소. 삼척블루파워 |
2050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에너지정책이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탈원전·탈석탄 등 에너지전환 정책의 기조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갑자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해온 각종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은 당장 두 달 여 뒤 지난해 12월 시한이었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 제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지 못했다. 또 지난 달 일명 ‘탄소중립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50년 탄소중립 추진의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조치의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특히 에너지믹스, 에너지바우처, 화석연료 기반 산업 등 관련 주요 정책이 탄소중립으로 가도록 하는 시스템에 맞게 전면 개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수술대 오른 탄소중립 시대 에너지정책’을 타이틀로 3회(상·중·하)에 걸쳐 기획시리즈를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에너지믹스, 이념 아닌 현실로 돌아가야
<중> 에너지바우처, 저탄소 구조로 개편 필요
<하> 시대 역행하는 화석연료 기반 산업 정책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신규 석탄과 원자력 발전소 역할론이 떠오르면서 전원믹스가 이념 아닌 현실로 진행돼야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탈원전·탈석탄을 추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구조를 개편해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경제성이 보완될 때까지 천연가스(LNG)를 징검다리 전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히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과 원전을 배제한다는 기조로 에너지전환을 진행할 게 아니라 탄소포집기술(CCUS)등 신에너지가 상용화되고 재생에너지의 한계점이 보완되기 전까지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와 전력요금 부담을 덜기 위해 신규 석탄과 원전의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3일 전력업계 전문가들은 "신규 석탄과 원자력 발전소가 안정적인 탄소중립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무조건 배제할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손양훈 전력산업연구회장은 "국내 석탄발전 60기 가운데 30기는 폐기를 했고 조만간 30기가 또 폐기될 것이다. 그러면 신규 석탄 7기만 남게 되는데 기존의 발전원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몰라도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무조건 폐지하는 건 에너지 수급에 굉장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동욱 원자력학회장(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CCUS 기술이 상용화되서 정부가 정한 목표치를 무사히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신규 석탄을 이용하는 게 방법이며 동북아 전력망을 수입해 쓰지 않는 이상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발전원으로 사용하는 게 방법"이라며 "그렇지 않고 무조건 기존의 발전원을 배제할 경우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전력요금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주요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석탄발전이 전체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28.1%에서 오는 2034년 15%로 쪼그라든다. 국내 원전 설비용량 비중은 2020년 18.2%→2030년 11.8%→2034년 10.1%로 줄어들 계획이다. 대신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가 석탄과 원전이 물러난 자리를 채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비중은 지난 2020년 15.8%에서 오는 2034년 40.3%까지 커질 전망이다.
"신규 석탄·원전, 전력요금 부담 최소화 위한 안전장치"
에너지전환을 두고 제기되는 가장 큰 우려는 비용 부담이다. 기존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주요 발전원을 바꾸는 만큼 에너지전환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비용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태양광·풍력을 500GW까지 늘리는 비용 △재생에너지원 간헐성이 전력계통에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ESS(에너지저장장치) 최소 규모인 1000GWh 용량 증설 비용 △계통보강비용 △폐기물처리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다.
만약 이를 모두 전기요금에 반영한다면 국민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진행 기간이 짧아질수록 단기간에 치러야 하는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신규 석탄발전소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전력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며 "신규 석탄발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기준을 62.3%까지 늘린다고 알려진 정부의 탄소중립안은 비용 증가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석탄발전소를 징검다리 전원으로 쓰지 않고 조기 폐쇄하거나 전면 백지화 할 경우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 소송이 벌어질 수도 있다.
탈원전에 따르는 전력요금 부담은 일본에서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률이 줄어 2014년 0%를 기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전을 재가동했다.
원전 가동이 감소하면서 전력 생산단가와 전기요금이 오르고 전력 사용량이 많은 화학·IT기업이 일본을 벗어나는 등 경제적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 2010년과 원전 가동을 멈췄던 2014년 무역수지를 비교하면 14조4000억엔(153조6206억원)이 줄었다.
▲전력수급 현황판. 연합뉴스 |
"급격한 에너지전환, 전력공급 불안정 야기"
안정적인 전력공급 측면에서도 탈석탄·탈원전만을 고집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시간과 기상에 따라 발전 생산량과 효율에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태양광발전의 경우 해가 떠있는 낮에만,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이 부는 날에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신규로 건설돼 기술적으로 효율이 높은 석탄발전소를 가동함으로써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폭염이 한 달 넘게 이어졌던 올해 여름 신규 석탄과 원자력발전기가 전력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데 역할을 했다.
신규 석탄발전 7기 가운데 고성하이화력 1호기(1.04GW)와 신서천화력(1.00GW)이 준공을 마친 뒤 상업가동을 시작하면서 전력 생산에 투입됐다.
한국전력이 발표한 7월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석탄발전량은 2만1387GWh로 1년 전보다 13.6% 증가했다. 월간 석탄발전량이 2만GWh를 넘긴 건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또 계획예방정비 등으로 멈춰 있던 신월성 1호기와 신고리 4호기, 월성 3호기 등 원전 3기를 전력생산에 투입해 공급 공백을 채웠다.
당초 신고리 4호기는 지난 5월 설비 화재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다. 원안위가 화재 원인 조사를 마치고 안전성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7월 말 재가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폭염 등으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약 1주일 정도 앞당겨 재가동했다. 지난달에는 한울 3호기가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재가동을 허용받은 뒤 곧 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전 등 탄소중립 과정서도 친환경 측면 역할 충분"
친환경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환경단체와 국회의원들은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탈석탄·탈원전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규 석탄발전소에는 첨단 설비를 갖춰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고 원자력의 경우 무탄소에너지라고 강조한다.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신규 석탄발전소들의 경우 이미 대기환경보전법 기준 20~40% 강화된 배출기준을 적용해 노후 석탄발전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66~85% 감축할 수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기존 석탄발전소는 아임계압이나 초임계압이 적용돼 있다. 반면 신규 석탄발전소는 발전효율이 높아져 연료소비가 줄고 탄소 배출량도 크게 감소하는 초초임계압이 적용됐다.
윤 연구위원은 "초초임계압을 적용한 신규 석탄발전으로 1GW를 가동할 경우 온실가스는 노후 석탄 대비 연간 약 87만t 감축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부연했다.
원자력은 이미 무탄소에너지로 여겨지고 있다. 원자력은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는 캠페인인 ‘RE100 캠페인’에서도 온실가스 저감 에너지로서 재생에너지와 같은 인정을 받는다. 탄소국경세 등 무역장벽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특히 기존에 유지돼오던 화력에너지가 기술 성격이나 설비 등으로 곧바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힘들다는 점이 있지만 원자력으로 전환하기는 수월하다. 그래서 산업 생태계 위기나 인력 감축 문제 등 에너지전환에 따르는 우려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
"해외서도 탄소중립 방안으로 원전 꼽아…SMR 주목"
해외에서도 석탄발전 폐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주의 키스 피트 호주 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호주는 전 세계의 석탄 수요를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석탄은 많은 수익을 만들고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세금에도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5만명 이상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석탄의 임박한 퇴출을 보여주는 수치들은 매우 과장됐고, 2030년을 넘어 석탄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오는 2030년 이후에도 석탄 생산을 계속하겠다고 발언했다.
일본은 탄소저감 차원에서 원전수명을 40년에서 60년으로 연장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등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자력발전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EU는 최근 원전을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소형모듈원전(SMR)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형 원전보다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주민 수용성도 높다. 원자로 크기가 작아 사고가 났을 때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의 양이나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붕괴열도 적다. 대형 원전보다 초기 투자비가 저렴하고 설계도 단순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SMR과 차세대 원자로 지원에 7년 동안 32억달러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SMR을 최대 16기 건설하기 위해 5년 동안 2억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지난 2019년 소형모듈원전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설계개발을 마치고 오는 2030년대 SMR 시장 진출과 장악을 노리고 있다.
중국도 SMR에 적극적이다. 제4세대 SMR인 가스냉각로 건설이 막바지 단계에 놓여있다. 러시아도 소형원전의 다양한 활용성에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9년 이미 부유식 해상 SMR을 건조해 시베리아 북동쪽 오지에 전력을 공급했다. 나아가 시베리아 내륙에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개발 중이거나 개념이 제안된 SMR은 전 세계적으로 70여종에 달한다.
claudia@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