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유럽은 풍력발전이 예상보다 감소함에 따라 천연가스의 가격 폭등을 경험하였고, 이는 가뜩이나 허리케인 아이다 이후 경직되어 있는 미국의 천연가스 공급에 영향을 미쳐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까지 연결되었다.
그 사이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음으로써 2020년 4월의 20달러 대비 4배 폭등하면서, 국제경제가 에너지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인 변동성을 이제 우리는 블랙스완(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 현상으로 단순치부해서는 안 된다. 2010년대 이후로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높은 변동성은 어느 덧 뉴노멀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언제든 가격 리스크 또는 물량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탄소중립이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간헐성 자원인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고 있어 에너지 시스템의 강건성 확보가 더욱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동해안 전력망 확충은 계통역량 강화를 통해 변동성 시대의 회복탄력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 전력망 구축 사업인 초고압직류송전(HVDC)의 건설 시 동해안에 들어서게 되는 신규 유연탄 발전과 원자력 발전 뿐만 아니라, 태양광 및 풍력의 재생에너지의 계통 흡수도 제고됨으로써 다양한 에너지 포트폴리오 구축이 가능해진다.
직류송전 방식인 HVDC는 직류 출력인 태양광 발전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전류 변환에 따르는 전력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 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HVDC는 주파수가 다른 계통연계도 용이하기 때문에 향후 동북아 슈퍼그리드에서도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점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HVDC는 국가 전체 계통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와 한전의 계획대로라면 2026년까지 동해안-신가평 HVDC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현재 진행 속도로 볼 때에 낙관적이지는 않다. 2022년까지 들어서게 되는 신한울 원전부터 시작해서 2024년 무렵까지 완공되는 신규 화력발전소 외에 신재생발전기도 접속물량이 급속히 증가하여 계통제약의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다.
HVDC 완공 이전에 들어오는 신재생 물량은 ESS로 어떻게 관리한다 할지라도 적정 공기를 넘어선 송전선로 준공 지연은 대규모 발전제약을 초래하게 되는데, 동해안 지역의 경우 그 규모가 연간 약 6.4G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제약이 지속되면 2027년 이후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하는 기준 설비예비율에 미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설비적정 예비율 부족은 대규모 발전기 정비 등 계통여건의 불안정 이슈와 최악의 경우에는 대규모 정전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당장은 이와 같은 우려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탄소중립 정책 강화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조정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속히 확대될 것을 고려할 때에 지금부터라도 계통 이슈는 시급히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HVDC가 적기에 강원 지역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 수용성 확보가 해결되어야 한다. 산업부와 한전은 입지선정 단계부터 시작해서 보상 절차까지 지역주민의 참여 방식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HVDC 송전망 확충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지연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국적인 편익에 비해 비용은 지역에 머무름으로써 비용과 편익의 지역 불일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송전탑 인근 지역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절차도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도입과 망 사용료 요금체계 등 시장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전력자급률이 낮은 수도권으로의 전기 공급을 비수도권 지역에서 부담함으로써 발생하는 형평성 왜곡은 시장가격 체계를 통해 해소할 필요가 있다. 분산자원 확대에 따른 송배전망 계획은 앞으로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핵심적인 과제일 것인 바, 동해안 HVDC 사업을 모범적인 사례로 성공시킴으로써 변동성의 시대에 전력 공급 안정과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