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
발전 시설은 대규모로 건설하면 단위 발전량 당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는 경우로, 이는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종류에 관계없이 발전 시설은 대부분 기피 시설인데다 화력 및 원자력 발전의 경우 연료 공급과 냉각수도 고려해야 하므로 발전소의 입지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조건으로 인하여 발전 시설은 많은 수요가 존재하는 대도시와 먼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대도시와 인근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전망 구축이 필수적으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진일보한 기술이 적용된 초고압직류송전(HVDC)이라도 생활 터전 근처에 고압 송전망이 지나가는 것을 환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비용 측면에서 고압 송전선로의 모든 구간을 지중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보상을 포함하여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면서 계획대로 전력망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정치적인 이유로 이러한 과정이 제때 추진되지 못한다면 전력대란 등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지난 2018년과 2019년에 발표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 및 최종안에 이미 담겨 있다. 소통·참여·분권형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정부 갈등관리 시스템에 에너지분야에 특화된 갈등관리 모델을 도입·확산하여 에너지 관련 갈등관리 내실화"하는 것을 기본계획의 목표 중 하나로 발표하였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전력) 갈등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력망 구축에 있어서 사회적 갈등이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발전소 건설에 따른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보다도 갈등 해소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전력망 건설계획은 에너지 계획의 하위 계획이고, 정부의 장기 비전을 담은 국가 에너지 계획이 정치와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전력 시설은 한 번 건설하면 30년 이상 사용하게 되며, 발전소 하나, 송전선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운영되는 발전-송전-배전 시스템이 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신중하게 수립된 투자 계획이 차질 없이 실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생활과 산업 생산에 필수적인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가능한 한 정치와는 독립적으로 전력 공급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고압 송전선로의 확충 외에도, 에너지 전환과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력계통 혁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앞으로 섹터커플링에 따른 계통 혁신, 분산형 전원을 위한 지역 에너지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력망에 큰 변화가 예상되며, 그러한 변화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제도적 보완과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바탕으로 막힘 없는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