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가 지난 8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에서 SMP상한제 도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하고 있다. |
석탄발전이 탈석탄의 덫에 갇혔다. 문재인 정부가 진보진영의 이념과 환경단체 등의 주장에 밀려 글로벌 탈석탄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정책적 유연성 부족으로 결국 최근 글로벌 에너지대란에 대한 대응력 부재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가 탈석탄·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전환’을 강변하며 억눌러왔던 전기요금 인상 폭탄이 윤석열 정부 임기 초기부터 폭발 임계치에 도달, 비상 벨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에서도 석탄발전에 대해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분위기다. 석탄발전상한제 도입을 통한 발전사 영업제한, 현실성 없는 석탄발전 보상 등 정부의 석탄발전 시장 개입이 지나치다는 업계의 불만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터져나온다. 정부가 전반적인 에너지 수급에 대한 뚜렷한 대안 없이 한국전력공사 등 발전공기업의 수익 악화 속에 민간 석탄발전사 쥐어짜기에 들어갔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전기요금 인상 등 정면 돌파 없이 탈석탄 명분의 인기영합(포퓰리즘)에만 휘둘린다는 뜻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석탄발전은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할 전원이라는데 공감한다. 다만 탈석탄의 기후변화 대응 등 빛만 보고 비용상승 등 그림자는 보지 않는 근시안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상중하 세 차례의 기획 시리즈 게재를 통해 탈석탄 포퓰리즘이 낳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전력업계 전문가들이 새정부의 ‘시장원칙 기반 전력시장 조성’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최근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해소를 위해 전력도매시장 구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상한제 도입, 발전사 용량요금(CP) 및 신규 민간석탄발전기 표준투자비 축소 등을 추진하며 발전사들을 압박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용량요금은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살 때 SMP에 더해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표준투자비는 한전이 전력 구입 가격의 산정 기준으로 삼는 신규 발전소 투입 인정 공사비다. 용량요금과 표준투자비는 발전소 운영의 수익과 직결된 것으로 이를 축소하는 것은 발전사 손실 또는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특히 민간 발전사로선 이 문제에 민감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21일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전력시장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는 물가대책과 관련, 민생 지원을 이유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나쁘고 열등한 방법이라고 했다"며 "원칙적으로는 전기요금을 포함한 가격통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산업부는 한전의 적자 해소를 위해 노골적으로 정반대 행보를 보이며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정부의 지휘·감독을 받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나 비용평가위원회가 아닌 독립된 전력시장 규제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업계의 이같은 지적과 비판 속에 이날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공청회’를 갖고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 보편타당하고 신뢰 가능한 표준투자비 산정 필요
발전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2년 민간석탄 정산계수를 마련하고 2013년 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1000메가와트(MW)급 민간석탄발전 사업을 허가했다. 이어 2014년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정부승인차액계약’(vesting contract) 규정을 마련한 뒤 2015년 민간석탄 정산조정계수를 개정하고 2017년에 현재의 표준투자비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전력거래소는 2019년 ‘표준투자비 산정기준’ 연구용역을 통해 ‘현행규정의 신규 부지에 가상의 표준 발전소를 설계/배치하는 방식으로 표준투자비를 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두고 민간발전업계에서는 "정부의 규정에 따라 확정계약을 통해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제와 이해당사자인 민간석탄발전사와 협의 없이 전력거래소의 일방적 의견을 반영한 용역으로 표준투자비 선정방식을 변경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민간발전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발전소 건설에 현재는 폐지된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했다. 전력거래소가 제시한 표준투자비 산정은 그때의 방식"이라며 "현행 규정에 따라 표준투자비와 실적공사비의 차이에 대해 소명이 가능한 만큼 석탄발전사업자의 특성을 반영하고 산정시 포함되지 않았던 항목을 포함한 합리적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력시장 운영 개요 및 시장참여자별 주요 역할. |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민간석탄발전기의 정산조정계수는 총괄원가 보상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경영효율성 제고 유인이라는 명목으로 표준투자비에 의한 제한을 받게 되는데 표준투자비는 입지별, 설비용량별로 표준발전기를 표준부지에 표준 부지배치로 건설한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 발전기 공사비를 의미한다"며 "그러나 표준투자비는 가상적인 입지, 부지와 부지배치를 전제로 하기에 그 산정결과의 타당성은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발전소의 최종투자결정(FID)에 앞서 잠재발전소를 상대로 ‘기준가격’(strike price) 입찰이 이뤄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발전사업 허가와 정부승인차액계약 체결이 이뤄졌더라면 이러한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발전자회사 정산조정계수는 투보율 격차 유지, 전원간 투자우선순위 유지, 향후 투자재원 조달, 발전자회사간 최소자본비용 상호 보전과 당기순손실 방지 등 정부의 해석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불명확한 기준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 정산조정계수는 (민간 발전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계열사간 상호 보조 메커니즘을 통해 LNG(액화천연가스) 발전기를 포함한 발전자회사의 수익구조를 전체적으로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비효율적 발전기들의 퇴출과 신규 발전기들의 진입을 저해해 전력시장의 효율적 작동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전, 전력구매가격 입찰제도 도입 추진…전력 도매가격 인하경쟁
산업부와 한전은 발전업계의 요구와는 별개로 전력구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이르면 올해 안에 전력도매시장의 전력 구매가격 입찰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도매시장 입찰제도는 한전이 희망하는 전력 구입 물량과 가격을 제시하고 발전사들도 가능한 발전량과 원하는 전력 판매가격을 써내도록 해 양측의 수요공급 물량과 가격이 일치할 때 거래되는 방식이다.
이는 에너지가격 급등 상황에서 발전업체들의 전력 도매가격 인하경쟁을 촉진, 1분기만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한전의 경영을 개선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전은 현재 전력도매시장에서 전날 파악한 전력 및 발전 수요를 바탕으로 전원 및 발전사별 연료비 평가를 받아 급전 순위를 정하고 전력 생산에 참여한 전원 중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 단가로 전력을 구입하고 있다. 현재의 CBP(Cost Based Pool, 비용기반전력시장) 방식이다.
▲현행 전력시장구조, 민간발전협회 |
이 경우 전력수요가 많은 때 대부분 비교적 연료비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발전이 전력생산에 참여, LNG 발전사들의 비용 감축 및 발전 단가 인하 경쟁을 유인하지 못해 한전의 전력구입 비용 규모가 커진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전력도매시장 입찰제도는 전력산업구조개편 때도 이미 추진했던 사안으로 새 정부가 전력시장을 바꾸기로 하면서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켜 현재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며 "(입찰제도 도입의 세부) 일정은 정부에서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전도 전력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입찰제도 도입에) 함께 참여할 방침"이라며 "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올해 안이나 내년 시행이 분명히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시행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확실하게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제도 방식과 관련 "입찰을 전원별로 나눠서 할지, 아니면 전체 양을 가지고 한꺼번에 입찰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정부와 한전이 제도 상세 설계과정에서 (전원별 유·불리 등) 충분히 고려하고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전력시장 규제기관 독립성 확립해야
한전이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전력구매가격 상한제 시행과 함께 실제로 전력도매시장에 입찰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민간 발전사들을 중심으로 큰 발발을 살 것으로 예상된다. CBP체제 하에서 민간 LNG발전기는 SMP와 용량요금 등을 지급받는데 개별 발전기의 실제 변동비와 제약요소를 적시에, 그리고 적정하게 반영할 수 없는 변동비 산정방식의 결함으로 인해 SMP를 결정하거나 계통제약발전(SCON)을 하는 최신 발전기들조차 그 실제 변동비를 모두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만연해 있다.
발전업계는 꾸준히 보편타당하고 신뢰 가능한 표준투자비 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정이 불가할 경우라면 제3의 외부기관 직접 검증이나 정부승인차액계약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식으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전기요금 조정이 경직적이어서 원가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라며 "독립성 및 객관성을 확보한 제3의 기관에서 심의 및 의결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 교수는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전기요금 결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라며 "전기위원회에 실질적인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부여하고 위원 구성·역할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 교수는 "전기위원회를 독립적 에너지규제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네트워크 에너지(전기·가스·열 등)의 비용구조 검증·요금수준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일방적 정책수립과 이행을 통해 그동안 겪었던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일관되지 못한 정책으로 인한 업계와 국민의 불신을 회복할 별도의 소통과 갈등관리 기구나 조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