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이 지구촌의 지상 과제로 등장하면서 글로벌 자동차산업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제조사들은 친환차 시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산업 생태계나 소비자 선호 등이 각각 다른 만큼 주요국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친환경차 정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기차, 수소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하이브리드차 등 선택지도 다양하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자동차 강국’ 독일을 찾아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현지 기업들의 친환경차 전환 현주소와 전략을 알아보고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진단하는 ‘獨 친환경차 전환 현장을 가다’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① ‘하이브리드’ 실험 끝…전기차로 직행
② 전기차가 대세…인프라 확충 가속
③ 현대차 전시장 르포…아이오닉5 열풍
▲독일 뮌헨 외곽의 대형 슈퍼마켓에 전기차 충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
[뮌헨(독일)=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요. 힘들 것 같습니다."(독일 완성차업계 관계자)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PHEV 수요가 많다. 제작사들이 관련 신모델을 대거 출시했고, 정부도 보조금을 지원했다. 단거리는 전기로 주행하고, 충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휘발유를 사용한다는 PHEV의 장점 때문이다.
지난 19~23일 직접 찾은 독일 뮌헨에서는 PHEV를 필두로 한 ‘친환경차 실험’이 끝나가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도 내연기관차 이후 곧바로 전기차로 넘어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연기관차 기술력에 미련을 못 버리던 독일이 전기차 전환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뮌헨은 독일 남부의 핵심 도시다. BMW 본사가 있어 시민들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알려졌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본사가 있는 슈트트가르트를 제외하면 가장 큰 전시장을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다만 교통 환경은 서울이나 부산 등 우리나라 도시들과 달랐다. 오래된 건물이 많고 높이 제한 등이 워낙 엄격해 지하주차장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U, S 등 지하철 노선은 서울만큼 복잡하다. 인구가 150만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중교통이 엄청나게 발달했다는 평가다. 도심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고 트램도 자주 다닌다.
▲독일 뮌헨 구시가지 근처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 시내에서 차량을 충전하기 위해서는 충전 단자를 별도로 준비해와야 한다. |
자연스럽게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크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대형 건물의 지하나 주차 공간이 넓은 슈퍼마켓 등을 찾아가야 했다.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구시가지 근처에는 충전기가 많이 마련되지 않았다. 실제 현지 언론들도 정부나 주 차원에서 충전 시설을 적극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을 자주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충전기를 차지하고 있는 PHEV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독일 연방 자동차청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PHEV 등록 대수는 전체의 1.3% 수준이다. 가솔린(63.9%)이나 디젤(30.5%)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순수전기차와는 점유율이 같다. 올해 4월 기준 정식 등록된 전기차는 68만7241대, PHEV는 62만2971대다.
도심에서도 PHEV를 충전하는 시민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뮌헨의 경우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라 고급 브랜드 PHEV에 대한 수요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현지인의 전언이다. 뮌헨 외곽 한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만난 30대 독일인 운전자는 "PHEV는 충전에 대한 압박이 덜해 전기차보다 좋다"고 말했다.
▲독일 알디 슈퍼마켓 전기차 충전소. 태양광 패널을 통해 만든 전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해가 떠 있는 경우에만 충전이 가능하다. |
▲독일 뮌헨의 한 알디 슈퍼마켓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덮여 있다.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전기차에 무상제공한다. |
재미있는 광경도 목격했다. 알디(ALDI) 슈퍼마켓에서 PHEV 운전자가 전기차에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전기차는 충전하지 않으면 주행이 힘들다는 점을 배려한 것으로 보였다. 독일 최고부자가 운영하는 알디는 태양광패널을 이용해 만든 전기를 전기차에 무상 제공하고 있다.
다만 판매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BMW, 벤츠, 오펠, 현대차 등 전시장을 둘러봤지만 PHEV를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없었다. BMW와 벤츠의 경우 매장이 워낙 넓어 PHEV를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직원들도 최근에는 순수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 연방정부가 최근 전기차 보조금 삭감안을 발표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부터 보조금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게 골자다. 2024년부터는 4만5000유로(약 6200만원) 이하 차량에만 지원금을 준다. 그동안 최대 4500유로(약 620만원)를 지급했던 PHEV 보조금은 아예 없어진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PHEV에 주목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름도 넣고 충전도 할 수 있는 이 차의 장점을 잘 살리면 친환경차 시대로 넘어가는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충전 인프라를 확장하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운전자들의 인식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다.
▲독일 뮌헨에서는 충전하고 있는 PHEV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
다만 대부분 국가에서 보급은 많지 않았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개발을 꺼렸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정부도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내연기관차 ‘패권’을 쥔 프리미엄 브랜드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PHEV를 개발해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 역시 이들의 이익을 위해 구매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줬다.
현지 소비자들은 PHEV가 이용도 편리하고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다만 내년부터 보조금이 없어지만 시장 침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사들도 순수전기차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자동차 강국에서 성장을 꿈꿨던 PHEV 시장은 결국 그 존재감을 발산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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