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택가 전기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지역별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한 해법 모색이 한창이다. 대규모 원자력 발전 등 중앙집중식 발전소 운영의 효율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분산에너지로 각광받은 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송전망 구축에 한계가 속속 드러난데 따른 것이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에너지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환동해 데이터센터 허브 구축’ 을 제언한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밑그림을 담은 장기 전력수급설계(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전력설비의 구축과 운영에서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효율은 높이자는 취지다. 환동해 데이터센터 허브 구축은 우선 전력 생산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원거리 생산 전력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전력 수요의 분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나아가 최근 발전설비 증가로 발전소 가동률이 점차 떨어져 자원 낭비를 초래하는 동해안지역의 발전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관련 제언을 신년기획 시리즈로 마련, 매주 2회 총 5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환동해 데이터센터 구축 시리즈 연재 순서>
△ 1회=전력 생산 지역 편중 심화
△ 2회=전력 소비, 수도권에 집중
△ 3회=갈수록 커지는 송전 장애
△ 4회=‘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
△ 5회="데이터센터 유치 파격 지원 필요"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전력 소비의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수도권의 전력 소비량은 현재 전국의 3분의 1을 넘는다. 인구가 절반 이상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쓰는 대규모 산업단지 등이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소비량이면 정부가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는 동해안 지역을 비롯한 지방에 몰려있다. 원전이든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든 환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전의 경우 많은 우려 불식에도 주민 안전 관리는 물론 폐기물 처리가 늘상 주민 또는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 사안이다. 석탄 또는 LNG 발전도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배출로 역시 주민이나 환경단체의 공격 대상이다.
전력을 먼 거리에 보내려면 송전망 확충이 필요하다. 이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송전과정에서 전력의 일부가 손실되기도 한다.
그래서 발전 시설을 생산지 인근에 설치해야 한다는 이른바 에너지 분산론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소규모로 설치가 비교적 간편해 소비지 인근에 마련할 수 있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이 각광받은 이유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 관리에 한계를 드러냈다. 잇단 환경문제 제기와 주민 피해에도 전력수급 안전 등에서 이미 검증된 원전이나 화력발전 등 대규모 중앙집중식 발전설비 의존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정부나 대형 발전사들이 주민피해를 최소화하되 그 피해가 불가피하다면 피해 분담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기요금의 지역별 차등화론이 그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요금을 발전설비가 있는 지역엔 싸게, 없는 지역엔 비싸게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각종 피해를 부를 수 있는 발전설비 지역 주민과 그런 발전 설비도 없고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송전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지역 주민이 똑같은 단가로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수도권은 전기요금 부담에서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수도권은 주변에 발전설비도 많이 갖추지 않아 청정지역으로 남아 멀리 떨어져 있는 전력 생산지로부터 전기를 끌어다 쓰는데 따른 별도 추가 비용 없이 전기를 안정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전력소비량이 큰데도 발전설비 관련 비용 부담 없이 전력 생산 지역과 똑같은 요금단가로 전기를 쓰고 있다. 수도권이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요금을 내고 이게 전력 소비량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지역별 전력 소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 지역균형 발전은 공허하다는 뜻이다. 전기요금 단가가 지금처럼 동일하면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이 지방으로 옮겨갈 수 없다. 수도권 등의 전력 낭비나 과소비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방 전력 생산지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하면서 환경 등 피해만 본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지역경제가 위축되면서 전력소비량 불균형 문제는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전력사용량이 수도권에 집중되자 이를 지역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을 전력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은 지역에는 전기요금을 더 저렴하게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요 공급의 원리대로 전기요금을 부과하고 수요를 지역에 분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에 데이터센터 등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10년간 수도권 전력소비량 추이. (단위: GWh) 자료= 한국전력 2022년 10월 전력통계월보 |
◇ 전력소비 수도권에 39% 집중…해마다 4.0%씩 늘어
5일 한국전력공사의 지난해 10월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까지 수도권에서 소비한 전력량은 총 17만9708기가와트시(GWh)로 전국 소비량 45만8514GWh의 39.2%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은 국토면적으로는 전국토면적의 12%를 차지하나 인구와 지역 내 총생산 등이 절반을 넘으면서 전력소비량도 몰려있다. 반면 수도권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11만8927GWh로 나머지인 6만781GWh의 전력을 지방의 발전소로부터 송전받아야 한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의 전력 소비량은 지난 2000년(8만9475GWh)부터 2021년(20만5643GWh)까지 해마다 평균 4.0%씩 늘었다. 반면 비수도권의 전력 소비량은 같은 기간 해마다 평균 3.7%씩 늘었다. 수도권의 전력 소비량과 지역의 전력 소비량의 격차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전국의 총 전력 소비량은 53만3430GWh로 이중 수도권 전력 소비량은 20만5643GWh 38.5%를 차지했다. 지난해 10월까지 수도권 전기사용량은 전국의 39.2% 차지하면서 전체 전력 소비량 중 수도권 전력 소비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에 전년대비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전력거래금액은 지난해 수도권에서 총 17조2279억원이 거래돼 전국 55조725억원의 31.2%를 차지했다. 수도권의 전력거래금액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기사용량 비중과 비교할 때 더 낮았다.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전력을 더 저렴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 송전과정에서 해매다 전력생산량 1.6% 씩 손실…사회적 비용도 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송전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전국의 송전선로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전력수급체계는 북쪽의 수도권으로 향하는 ‘북상조류’의 특성을 갖고 있다. 송전선로는 경기도 2453km 그 다음 경북이 2013km로 가장 길다. 송전탑은 경북이 6305개로 가장 많다. 송전과정에서 해마다 약 8651GWh 전력을 잃고 있다. 이는 지난해 기준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1.6%에 달하는 양이다. 송전설비로 인한 인근 지역 피해 보상 등에 따른 갈등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지적됐다.
지역에 화력발전소 발전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폐기물 처리 등에서도 갈등비용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발전소를 설치해 생산한 전력을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전송해야 한다. 하지만 송전과정에서 전력을 일부 잃기도 하고 송전망을 확보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송전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에서 전력을 소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홍수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송전손실·송전갈등에 따른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다 몰려있는데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의 전력 집중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인다. 지역으로 데이터센터가 분산될 수 있도록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방식을 활용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
◇ 데이터센터와 기업 특구 유치, 대학 이전 등으로 지역 전력소비 유도해야
전문가들은 지역에 전력소비를 분산하기 위해 결국 주요 시설을 이전해서 전력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송전망 문제가 일부 해소된다고 해도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없으면 전력계통관리가 힘든 상황"이라며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현실화돼서 지역단위에서 전력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지역별로 전력 송전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달리 매기는 제도를 말한다.
그는 "아직 송전망 갈등 비용은 아직 합의가 안 돼있다"며 "송전 갈등비용을 표준화하는 연구가 꽤 진행 중이다. 앞으로 혼선이 없도록 연구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학도 상당히 전기를 많이 소비한다"며 "서울 상위권 대학의 일부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게 지역 균형과 에너지 이슈를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산업단지를 지역에 확대하는 방안도 전력소비를 지역에 분산하는 대안으로 꼽힌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산업단지의 에너지 사용량은 2018년 기준 1억1086만6100 toe(석유환산톤·1toe는 원유 1t의 열량)로 이는 국내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53.5% 차지하는 양이다.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지역 균형을 위해 "수도권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지역 투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며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연구개발(R&D)와 기술, 마케팅 지원을 하는 사업이 있다"고 설명했다.
설홍수 박사는 "기업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2∼1.8% 정도 된다"며 "앞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전기요금 할인이 기업을 유치하는 하나의 인센티브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발전 특구 등 일반 기업들을 지방에 유치하기 위해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구 중심으로 전기요금을 할인해서 기업을 유치해 지역에 전력소비를 분산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