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중앙은행들이 금리정책 방향을 바꾸는 피벗으로 역대급 엔저(円低)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자산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엔/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면서 크게 주목받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대거 청산될 수 있어서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다수 국가들이 금리인하에 속도를 올리는 가운데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투자자들이 엔 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통화인 엔화를 조달해 매도한 자금으로 고금리 통화를 운용하는 기법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거나 주요국 간 금리 차이가 벌어질 때 나타난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그동안 인기를 끌었던 배경엔 달러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초 달러당 최대 161.9엔까지 급등하면서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만 최고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전날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0~0.1%에서 0.25%로 4개월만에 또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2008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은행은 또 지난 6월 회의에서 예고한 장기채 매입을 내년 1분기까지 현재 6조엔에서 3조엔으로 절반 가량 줄이는 등 '양적 긴축'도 결정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했지만 9월에 금리인하를 시사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르면 9월부터 금리인하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준이 고금리 장기화 기조에서 마침내 벗어나고 일본은행이 긴축에 본격 시동을 걸자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엔저의 주요 요인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큰 금리차가 앞으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결과 발표 무렵 달러당 152엔대에서 1일 오전 장중 148.51엔까지 급락했다. 엔화 환율이 달러당 150엔선을 밑돈 것은 지난 3월 이후 약 5개월만이다.
이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려는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다.
싱가포르 메이뱅크 증권의 타렉 호차니는 “헤지펀드들이 엔 캐리 트레이드 전략을 재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과 주요국 간 금리차 축소는 엔화 숏(매도) 포지션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트려 캐리 트레이드 또한 덜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엔화 환율 변동성이 커진 것도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을 부추길 수 있는 또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엔화는 환율 변동성이 제한적이어서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던 통화였다.
노무라의 미야이리 유스케 외환 전략가는 “변동성이 낮을 때 캐리 트레이드가 통한다"며 “변동성이 커질 경우 투자자들은 포지션을 청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에 따르면 전날 엔/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이 27%까지 급등했는데 이는 올해 최고수준이었다. 여기에 지난달 일본 금융당국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 엔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판,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 등으로 엔화 환율이 크게 움직였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프랭크 벤짐라 전략가는 “전날 일본은행의 결정으로 변동성이 증폭됐다"며 “케리 트레이드의 반전이 목격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이렇듯 엔화 강세에 따른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장을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캐리 트레이드의 실패로 손실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최근 뉴욕증시 기술주 폭락을 가속화했다고 설명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 글로벌 외환 총괄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투자기법 중 하나였다"며 “청산이 진행되면 다른 위험자산 포지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