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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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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휴게시간 있으면 뭐하나, 쉴데가 없는데”…폭염 속 야외 근로자들 생존 싸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8.19 13:43

건설근로자 “매해 더워져…제대로 된 휴게 공간 없어 열 식히기 어렵다”

전문가 “법안 마련 한참 걸려…정부가 빨리 나서서 효율적 개선 이뤄야”

택배 쉬는 날 앞둔 물류센터

▲'택배 쉬는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직원들이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 현장 일을 한지 10년이 됐는데 매해 더 더워지는 걸 느낀다. 올해도 작년보다 확실히 더 덥다. 이런 폭염에 일을 하면 생명에 위협도 느낀다" -서울 광진구 구의역 인근 건설 현장 일을 하는 전병수 씨(51)-


“휴게시간이 주어져도 적절한 휴게 공간이 없어 제대로 열을 식힐 장소가 없다. 휴식 시간의 가이드라인이 있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지켜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른 건설 현장 일을 하는 김모 씨-


올 여름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더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면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끼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이달 18일 오후 4시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남성 2126명, 여성 615명 등 총 2741명이다. 작년 온열질환자 수인 2419명보다 322명이나 늘었다. 올해 사망자는 벌써 24명이나 발생했다.


직업군 중 단순 노무자가 628명(22.9%), 농림·어업 숙련종사자가 237명(8.6%) 등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을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근로자들은 높은 기온과 습도 속에서 장시간 일하면서 극도의 피로와 탈진에 시달리고 있다. 폭염이 지속되면서 정부에서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를 권고했지만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현장에서 나오는 지적이다.


택배 기사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일하는 택배기사인 박성훈 씨(42)는 “폭염 속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숨이 가빠진다"며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차량에서 상품을 배송하다 보면 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더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많다.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느낀다"며 “뉴스에서는 폭염 관련 법안을 만든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외에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도 근로자가 고열 작업을 하는 경우 휴식과 그늘진 휴게시설을 제공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기준이 모호하고 강제력은 없어 근로자들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2대 국회에서 폭염 등 극한 기상 상황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됐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보건조치 의무에 폭염과 한파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근로자가 폭염, 한파, 황사 등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강득구 의원은 작업중지권에 기상 이변을 포함하는 법안을 발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의 중에 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하려면 최소 몇달이 소요된다. 올 여름이 다 지나간 후에 방지법이 마련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속히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야외, 옥외 노동자들은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인데 여러 가지 안전망이나 보호장치가 굉장히 소홀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행정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는 과정이) 속도를 내기가 어려운 만큼 정부가 빨리 나서서 효율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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