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새롭게 제출한 두산밥캣의 지배구조재편안을 두고 다시 금융감독원의 반려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감원은 이전에 제출된 신고서에 대해 현금흐름할인법(DCF)이나 배당할인법(DDM) 등을 적용한 평가 결과를 기존 시가 기준 평가와 비교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새로 제출한 신고서에 “현금흐름할인모형 등은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사실 상 금감원의 요구를 거절했다.
“적용할 수 없다"…DCF·DDM 거부한 두산그룹
22일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전일 공시된 두산로보틱스의 증권신고서 등에는 두산그룹의 새로운 지배구조 재편안이 담겼다. 두산그룹은 새로운 신고서에서 “(두산밥캣 가치 산정)현금흐름할인법 또는 배당할인법 적용 시 미래의 매출 및 영업이익의 추정 등을 포함한 많은 가정사항들이 적용된다"며 “가정사항들은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값 또한 평가인의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의 분할신설부문(두산밥캣 지분 보유)의 수익가치는 관련 규정에 따라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모형을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금흐름할인법과 배당할인법 등을 적용해 기존 기준시가를 적용한 평가방법과 비교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정정된 증권신고서도 금감원의 요구사항은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요구한 DCF나 DDM을 적용한 결과를 두산그룹이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두산그룹이 금감원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DCF나 DDM을 적용할 경우, 두산밥캣의 실제 가치가 현재 제시된 합병 비율보다 높게 평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이를 보여줄 경우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지배구조 재편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두산밥캣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두산로보틱스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DCF나 DDM을 적용하면 두산밥캣의 가치가 현재 두산그룹이 제시한 수치보다 더 높게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새 합병비율, 기존보다 소폭 개선됐지만
새로운 합병안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새로운 분할합병비율에 따라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기존보다 1주가량 많은 4.33주 받을 수 있다. 이는 기존보다는 확실히 유리해진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 보유 주주의 주식 가치가 약 39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DCF나 DDM을 적용했다면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DCF나 DDM은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두산그룹이 새롭게 적용한 '경영권 프리미엄'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요소라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기업의 지배권에 대한 추가 가치다. 하지만 크기를 정확히 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리미엄의 크기는 대상 기업의 특성, 시장 상황, 인수 기업의 전략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경영권 프리미엄도 계산하려면 여러 가정을 필요로 하며,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두산그룹이 43.7%의 프리미엄을 계산하기 위해 제조업 산업군의 과거 10년 평균을 적용한 것도 판단의 결과다. 두산그룹이 DCF나 DDM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 이유와 마찬가지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업계, 금감원 반려 가능성 제기
결국 이번 신고서도 금감원의 반려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금감원은 “향후 회사가 정정신고서 제출시 동 정정요구 사항이 충실히 반영되었는지 면밀히 심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이미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무제한으로 증권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금감원이 계속해서 신고서를 반려하는 이유는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정한 기업가치 평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뚜렷하다.
한 두산밥캣의 주주는 “두산그룹의 새로운 제안은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며 “이번 작업에 DCF나 DDM을 적용하라는 것도 아니고 숫자를 제시만 하라는 것인데도 이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