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판이 초박빙 접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지난 몇 년간 대미 투자에 열을 올렸던 한국 등 아시아 기업들이 선거 결과에 숨죽이고 있다.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이끌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들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폐지·축소될 수 있어서다.
31일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의 지난 10년간 자료를 보면 미국에 대한 글로벌 그린필드 투자(투자국에 생산시설·법인 설립)가 2021년에 처음으로 1100억달러선을 넘어섰고 다음해인 2022년에는 1751억달러로 더 늘어났다. 작년에는 투자액이 1381억달러로 전년대비 줄었지만 여전히 1100달러선을 웃돌았다.
이런 흐름은 특히 아시아 기업들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한국, 일본, 대만 기업들의 대미투자는 총 1470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의 경우 2021년부터 매년 199억달러, 242억달러, 215억달러씩 미국에 투자해왔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2014년부터 오름세를 이어왔지만 연간 투자액이 2020년까지 100억달러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각국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에 열을 올렸던 배경엔 미국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CHIPS) 등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한 보조금 정책들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더라도 각국의 대미 투자가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그대로 계승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나 CHIPS 등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낸 만큼 미국의 보조금 정책이 유지될지 미지수다.
실제 그는 IRA를 두고 '그린 뉴 스캠'(신종 녹색 사기)이라고 부르면서 당선되면 이를 폐기하고 아직 집행하지 않은 IRA 예산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공언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에 투자를 확대했던 국내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라시아그룹의 데이비드 볼링 이사는 “IRA 보조금이 폐지되면 해외 기업들이 투자를 재고할 수 있다"며 “정책이 크게 바뀌어도 기업의 대미 투자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NEF의 코리 칸토르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이어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경우 미국의 연비 및 자동차 배출 규제 완화는 거의 확실시되고 전기차 구매·리스에 대한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은 폐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최근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CHIPS에 대해 “그 반도체 거래는 정말 나쁘다"며 대만 TSMC 등을 겨냥해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 오는 반도체에 많은 관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라며 “난 '여러분은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의 공장을 미국에 짓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장을 짓도록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현재 CHIPS로 인해 마이크론 같은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동적인 정책 결정도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선임 고문인 빌 라인시는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성의 대가"라며 “그가 취임하면 갑작스러운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