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들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에서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통한 자산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확대까지 막힌 상황에서 은행들은 돌파구로 기업대출을 꼽아왔다. 은행들은 앞으로 기업을 정교하게 평가하고 선별해 우량 기업 중심으로 대출을 취급하겠다는 계획이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30조370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825조1885억원) 대비 5조1824억원 늘어난 규모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올 들어 63조57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8.2% 불어났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주문에 따라 가계대출 금리를 높이면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가계대출 확대에 제약이 생기자 기업대출로 눈을 돌려 기업대출 확대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금융지주사들이 밸류업 계획에서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높이기 위해 RWA를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업대출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CET1비율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눠 구하기 때문에, RWA를 낮춰야 CET1비율이 높아진다. RWA는 은행 자산을 유형별로 나눠 위험 정도를 반영해 계산한 것으로, 위험이 높을 수록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한다. 주택이란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보다 개인 신용대출이나 기업대출이 더 위험도가 높다고 보고 위험가중치가 더 높게 부여되는 식이다.
결국 RWA 관리를 위해서는 위험이 높은 자산 확대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대출을 더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 기업대출 문을 잠근 사례도 나왔다. 우리은행은 기업대출 잔액을 줄이면 행원들의 핵심성과지표(KPI)에 가점을 주겠다는 이례적인 조치를 내놨다. 여기에 각 영업점이 가진 신규 기업대출 금리 전결권은 본사로 제한했다. 사실상 기업대출의 신규 취급을 막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기업명가 재건'을 내걸며 역마진을 감수하고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왔지만, 3분기 동안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판단하고 11~12월에는 보수적으로 기업대출을 관리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지만, 이같은 은행권 분위기에 신용도가 낮거나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중심으로 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중단하기는 어려운 만큼 더 세밀한 기업 평가를 통해 우량 대출 중심의 영업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은행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중심으로 기업대출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RWA를 관리한다는 것은 기업대출을 무작정 늘리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신용도가 좋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 개인사업자 중심으로 대출을 늘릴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