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구소 분원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했던 차에 점심시간을 빌어 소화도 시킬 겸 주위를 산책하게 되었다. 걷던 중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크고 웅장한 건물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국내의 한 빅테크 기업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였다. 주위에 그만한 규모의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는데,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수용 및 운용하고 있는 하이퍼스케일(hyper-scale)급의 데이터센터라고 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는 개인용컴퓨터(PC)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23년 기준으로 총 150개를 넘어섰다. 그 추이를 살펴보면 2010~2020년에 비해 최근 3년 동안의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커졌는데, 2029년까지 예정된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700개가 넘는다.
컴퓨팅 시스템 및 관련 하드웨어 장비들이 집적된 데이터센터의 이러한 증가세는 우리 일상의 디지털화와 함께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소비량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7월 기준으로 이동전화 가입자당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15GB를 넘어섰으며, 2024년 9월 기준으로는 5세대 이동통신 사용자들이 평균 28GB를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개인이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을 통해 이용하는 데이터소비량이 이 정도이니, 데스크탑이나 랩탑, 테블릿 등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데이터의 총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슈는 이러한 데이터 사용을 뒷받침해 주는 데이터센터의 운영 및 유지에 있어 많은 전력량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은 학습이나 추론에 필요한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의 컴퓨팅, 그리고 냉각 과정 등에 기존의 정보처리 기술보다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적용 범위 확대 및 빠른 기술 발달 속도를 고려하면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6년 기준 최대 1,000TWh를 넘어설 수 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총 전력 사용량(588TWh)의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증가세를 반영하여 전력수요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 등을 수립하고 있다.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 사용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의 증가는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력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어 관련된 전력계통 및 전력수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공공 데이터센터보다 비중이 높은 민간 데이터센터의 경우 70% 이상이 이미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지만, 관련 사업자들은 광섬유망 등 정보통신 인프라의 사용, 소비자 근접성 확보를 통한 데이터전송 지연 발생의 최소화, 관련 서비스 제공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신속 대처 등을 이유로 여전히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고 있다. 작년에 정부에서 발표한 데이터센터 신규 신청 기준 전력수요 전망 자료를 보면, 2029년까지 지리적 분포나 전력수요 양면에서 모두 수도권 비중이 8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4년 상반기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센터들은 인허가 및 착공이 대부분 지연되었으며, 신규 허가를 득한 사업자는 단 한 군데뿐이다. 전력계통 및 수급상의 부담과 맞물려 데이터센터의 적기 공급이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문제를 우려하여 수립된 정책들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자들에게 유인책은 약하고 규제만 많아진 것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경제의 둔화나 데이터 외주화로 인한 보안 취약성 증가 등은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나 국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센터의 구축 및 운영은 전력의 원활한 공급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지원을 충분히 해왔던 전력산업이 앞으로의 디지털화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집단지성 등을 통해 혜안을 모을 때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