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 한도 축소 등으로 대출 문턱을 높인 은행권이 내년 1월부터는 대출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조금씩 규제를 완화한다. 해가 바뀌면서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압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다수의 은행권이 유지하고 있는 다주택자 대상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내년 1월부터 현재 적용 중인 가계대출 규제 가운데 일부를 없애거나 완화할 예정이다.
현재 1억원으로 묶인 주택담보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폐지하는 방안, 올해 8월 중단한 신규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MCI, MCG) 적용을 부활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MCI, MCG는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이다. 해당 보험이 없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제외한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출 한도가 축소된다. 반대로 보험이 적용되면 서울 지역은 5000만원 이상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NH농협은행도 이달 30일부터 비대면 직장인 신용대출 4개 상품(NH직장인대출V, 올원 직장인대출, 올원 마이너스대출, NH씬파일러대출) 판매를 재개한다. 내년 1월 2일부터는 임대인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자금대출도 다시 허용한다.
앞서 신한은행은 이달 17일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MCI와 대출 모집인을 통한 대출도 다시 취급하기로 했다. 미등기된 신규 분양 물건과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자금대출도 재개됐다. 다만 현재 대출 신청을 받더라도 내년 실행되는 대출부터 완화된 규정이 적용된다.
하나은행은 이달 12일부터 내년 대출 실행 건에 한해 비대면 주택담보, 전세자금대출 판매를 재개했다. 우리은행도 이달 23일부터 비대면 가계대출 중단 조치를 해제한다.
은행권이 올해 7~8월부터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했다가 새해 들어서 규제를 완화한 것은 가계대출 총량이 새롭게 설정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올해 목표로 제시한 정책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증가율을 연말까지 맞추기 위해 지금까지 가산금리를 확대하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인상했다. 나아가 주택보유자의 수도권 주택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는 식으로 규제를 강화해왔다.
금융당국은 내년 초부터 가계대출 관련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자금 공급을 원활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20일 “연말에는 연중에 있었던 수도권의 지나친 부동산 급등세에 대응해 엄정하게 가계대출을 관리했다"며 “내년에는 시기별 쏠림이 과하지 않도록 평탄하게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해가 바뀌면 가계대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자금 공급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은행권이 유지하고 있는 다주택자 대상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은행권은 1주택 보유자가 수도권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는 경우, 2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전국 어느 곳에서라도 집을 더 구입하는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해당 사례는 실수요자가 아닌 유주택자의 투자 목적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해부터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도 유주택자 대상 주담대 규제를 풀어줄 명분은 없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