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도입됐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1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나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 업계 지형도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를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29일 정계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단통법 폐지안을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통법은 지난 2014년 건전한 시장 활성화와 소비자 차별 방지를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지원금 경쟁이 위축되면서 단말기 구입 부담을 높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소수 이용자만 이른바 '성지(온라인 홍보와 내방유도를 통해 높은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휴대폰 유통점)'를 통해 혜택을 누리는 현상도 여전했다.
단말기 공시지원금 제도와 추가지원금 상한은 없애고, 25%의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할인제도는 전신법에 이관해 유지하는 게 골자다.
지원금 차별 지급 금지 조항은 삭제하되 이용자의 거주지·나이·신체조건 등을 이유로 지원금을 부당하게 차별 지급하는 것은 금지토록 했다. 이와 함께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자료제출 의무 조항도 신설했다.
판매점 적격성을 심사하는 '판매점 사전승낙제'와 단말기 구입비용 오인 유도행위 금지 조항도 포함된다.
개정안은 6개월 이후인 내년 6월 시행된다. 이에 따라 다음달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5 시리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장기적 관점에서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마케팅 전략 구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통신사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을 촉진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단통법 도입 이전 주로 사용되던 '스폿(spot) 전략'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주말이나 평일 심야 시간대에 보조금 30만원~50만원가량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단시간에 많은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정부는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후속조치를 마련해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예전과 같이 적극적인 마케팅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통신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통신 3사 모두 AI 등 신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어 보조금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 즉, 실질적인 통신비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을 통한 서비스 가입이 늘어나는 등 유통시장 지형이 변화한 것도 한몫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은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를 통해서도 휴대폰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며 “보조금을 많이 푸는 게 가입자 증가로 이어지던 과거와 시장 판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단통법 폐지 소식을 반겼던 단말유통업계도 최근 입장을 선회한 모습이다. 고가 요금제 유도 및 장려금 차별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책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판매점 사전승낙제가 유지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통신사 대리점이 판매점을 선임할 때 통신사의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판매점은 대리점과 협정을 맺고 계약 체결을 대행한다. 대리점이 판매점에 업무를 재위탁하는 과정에서 통신사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단말유통업계는 이중규제를 이유로 폐지를 주장해 왔다.
제조사의 장려금 제출 의무조항이 포함되는 것 또한 소극적인 장려금 운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단말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의 구입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이번 단통법 폐지안에는 지난 10년 간 유통망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들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사전승낙제에 대한 후속 조치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점 역시 졸속 법안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