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익을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세계 각국이 '트럼프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을 두며 동맹과 우방국에도 예외 없이 '관세 폭탄'을 부과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1일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550억달러로, 적자 규모가 전년 동기대비 28% 치솟았다.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2023년 535억달러에서 지난해 549억달러로 2.5% 증가에 그친 반면 한국산 제품 수입이 964억달러(2023년)에서 1099억(2024년)달러로 14% 급증한 탓이다.
1년 만에 무역적자가 대만 다음으로 가장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해려 소폭 개선됐다. 유럽연합(EU)을 제외하면 한국의 무역적자국 순위는 8위다. 한국은 2023년 역대 최대 규모인 444억달러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통상 정책 공약 및 안보 기조를 고려하면 역대 최대 수준의 대미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관세의 주요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대적 정책 변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다른 국가들이 통상 전략을 어떻게 짜는지 관심이 쏠린다. 대부분 국가들은 미국산 에너지 수입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는 대중 관세마저 높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대거 수입해 대미 무역흑자 폭을 낮출 계획이다. 미국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594억달러로 집계됐다. 2023년 같은 기간보단 3% 감소된 수치지만 일본의 무역적자국 순위는 7위(EU 제외)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 역시 미국산 항공기, LNG 등 수입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중국 다음으로 무역적자가 큰 EU 또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EU에 미국산 에너지를 대규모로 구매토록 요구하면서 불응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미국산 LNG와 방산 장비 수입을 늘리는 동시에 일부 미국 수입품의 관세를 내리는 방안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미국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 고급 오토바이 등에 각각 45%, 25~6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적자국 2위인 멕시코의 경우 미국·캐나다를 제외한 의류 완제품 138종에 대해 35%의 수입 관세 부과 방침을 지난달 19일 공표했다. 또 원단 17종에 대해서도 1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코드를 맞춘 행보라는 분석이다.
우방국이 미국을 상대로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 캐나다 정부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우라늄과 원유, 칼륨 등 주요 대미 수출 원자재에 대한 수출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캐나다산 철강 및 알루미늄에 추가 관세를 발표했을 때도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일각에선 국내 민간기업들이 한국과 트럼프 당선인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요국 정상들은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줄대기'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정상 차원의 네트워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나설 수는 있지만 권한대행 신분으로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경우 트럼프 당선인과 취임 전 회동을 모색해왔지만 트럼프 당선인 측에서 응하지 않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1000억달러(약 143조6000억원) 대미 투자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 이시바 총리와 회동 가능성에 대해 “그들(일본)이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일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 사례처럼 국내 재계 총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외교 공백을 메울지 관심이 쏠린다. 이 중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16~21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무르며 당선인과 함께 환담을 나눴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한국의 정치인이나 외교관, 기업인 등을 통틀어 트럼프 당선인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는 정 회장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정 회장이 오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트럼프 1기 취임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대받기도 했다. 당시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번 취임식에도 초대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후 윤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지목한 조선업 사업에서 한화오션이 핵심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 SK, LG,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도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통해 안면을 튼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