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을사년(乙巳年)은 탄소시장과 전력시장이 푸른 뱀처럼 허물을 벗고 재탄생할 마지막 해다.
친환경에너지 전환 성공 여부는 새롭게 변모할 탄소시장과 전력시장에 달려있다 할 수 있다.
탄소시장 활성화로 화석연료에 대한 비용을 높여 상대적으로 원자력, 수소,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에너지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전력시장은 탄소시장의 지원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춰야 한다.
올해 이같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탄소중립 달성의 중간 과제인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배출권 가격 EU 65달러 韓 7달러 수준, “유상할당 비율 발표 안한 것 문제"
지난달 31일 환경부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2026~2035)'를 확정해 발표했다. 올해가 4차 배출권 기본계획의 구체적인 세부 이행 계획을 정리할 마지막 해다.
배출권제도는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배출권 제도란 탄소 배출 기업들에 배출량 한도를 정해두고 한도보다 넘치거나 부족한 배출량에 대해서는 기업끼리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탄소를 상품화하고 가격을 매기는 제도다.
환경부에 따르면 배출권 가격은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은 톤(t)당 65달러, 미국 캘리포니아 40달러, 중국 10달러였으나 우리나라는 7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이 매우 싼 것이다. 배출권 공급량이 지나치게 많아 가격은 급락했고, 저렴한 배출권 가격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 요인이 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탄소가격이 비싸야 기업이 에너지효율을 높이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의미다.
환경부는 4차 배출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배출허용총량을 줄이고 유상할당 비율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거나 높아지지 않도록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유상할당이란 기업이 돈을 주고 배출권을 배분받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배분받는 배출권의 최대 10%만 돈을 주고 구매했다.
하지만 아직 환경부는 기업들에 얼마나 배출량을 허용하고 유상할당 비율을 얼마로 할지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기업들이나 환경단체는 배출권제도의 배출총량과 유상할당비율에 주목하고 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아 반쪽자리 발표인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배출권 거래제가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과 국가 탄소중립 달성에 충분할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지난 2일 기후솔루션과 5개 환경단체들은 4차 배출권 기본계획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한 책임이 있으면서도 배출권을 무상할당 받고 있는 철강 등 산업 부문에 대한 유상할당 도입 검토를 제5차 계획기간(2031~2035)으로 미룬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폭 상향'하겠다는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최소한의 상향 범위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사회는 배출권 거래제 감축 목표를 NDC보다 강화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제5차 계획기간, 즉 10년 이후에나 배출권 거래제 감축목표를 NDC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제4차 계획기간(2026~2030)에 NDC보다 배출권 거래제 감축목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차 배출권 기본계획에서 여러 개선해야할 사안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선 나무이엔알 대표는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발전사의 재무적인 부담이 커질 텐데 발전사들이 상쇄배출권 시장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게 구매처를 다양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며 “현재 상쇄배출권 구매 한도는 5%인데 이를 더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증권사들의 배출권 경매시장 참여를 허용해준 건 실수다. 경매시장의 기능은 낙찰가격을 통한 가격발견 기능과 시장에 부족한 물량을 공급해주는 유동성 공급의 기능이 있다"며 “증권사들은 현물시장에서 거래해도 충분하다. 증권사들이 경매시장에서 물량을 마구 구매하면 배출권 유상할당업체들은 살 곳이 없어진다. 경매시장의 기능이 발휘할 여력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안정화 조치에 대해서는 “배출권 시장안정화 조치 발동 조건인 상단가격과 하단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환경부는 하단가격 결정 기준을 이동평균으로 바꿨는데 상단가격도 이에 맞춰 기준을 통일해야 한다. 유럽은 상단, 하단, 기준 모두 이동평균선을 채택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정산금 현황(2024년 6~9월) (단위: 원/kWh) 자료= 전력거래소
전력시장 미완성, 재생E 입찰제도 제주도 시범사업 육지까지 확대 난관
전력시장도 배출권제도처럼 무탄소에너지를 품을 수 있게 완성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원전, 수소, 재생에너지가 모두 함께 경쟁하게 하는 '무탄소전원 통합용량시장' 도입을 준비 중이다. 해당 시장은 가격, 비가격 요소 등을 통합적으로 평가해 사업자끼리 경쟁을 시켜 전력시장에 입찰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가운데 수소, 태양광, 풍력 발전은 이미 각각 따로 경쟁입찰 시장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수소, 태양광, 풍력 경쟁입찰 시장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소, 태양광, 육상풍력의 경우 모집물량보다 입찰참여물량이 모자라 입찰이 미달됐다.
특히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처음 열린 청정수소발전 경쟁입찰에는 전체 6500기가와트시(GWh) 물량 중 약 11%인 750GWh만 낙찰됐다.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시장은 탄소시장이 활성화돼야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아직은 탄소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부는 재생에너지에 한해서는 경쟁입찰과 비슷한 재생에너지 경매제도를 도입 준비 중이다. 여기에서 낙찰이 돼야 전력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전력시장은 경쟁입찰에 낙찰됐다고 끝이 아니다. 경쟁입찰은 전력시장에서 거래할 물량과 가격을 결정하고 참여 자격을 얻는 것이다. 참여자격을 얻었을 뿐 실제 전력을 판매하려면 전력시장 내에서 또 입찰을 거쳐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경쟁입찰만 통과하면 다른 발전원들과 달리 발전만 해주면 무조건 전력을 구매해줬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이 도입되면 재생에너지도 다른 발전원들처럼 전력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실시간시장, 보조서비스시장 등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이 지난해 6월부터 시범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은 육지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제주도 시범사업의 현황은 지난해 12월 2일 열린 전력거래소의 전력시장 워크숍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는 총 395.6메가와트(MW)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참여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 재생에너지 물량의 45.2%에 달한다.
전력시장 워크숍에서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참여물량과 비참여물량의 전력판매가격을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9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 참여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발전량당 정산단가는 1킬로와트시(kWh)당 150.04원이었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 참여하지 않은 재생에너지의 정산단가 kWh당 146.85원보다 정산단가를 3.19원 더 쳐줬다.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서는 발전하지 않고 대기하기만 해도 용량정산단가를 지급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서 더 많은 정산단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 참여하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기 위한 자료공개로 보인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서 약속한 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때 받는 패널티는 비교적 약하다고 전해진다. 아직 제도 초창기다보니 패널티를 약하게 잡아 점차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력거래소는 제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시범사항에 대한 개선사항을 올해 1분기 안에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제주도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 참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에서 패널티가 강화되면 정산단가는 미참여 발전사업자가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재생에너지 물량이 늘어날수록 마이너스 전력가격이 더 자주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며 “앞으로 육지까지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을 확대 적용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